[日 언론인 고미요지, 北 김정은을 말하다] <7>김정일의 장녀 김설송...그녀의 앞날은

지금도 베일 속에 가려진 김정은의 이복누이 김설송
2011년 김정일과 기념사진 공개...진짜 김설송 맞나
김정일, 장녀 설송 자택서 숨져...발표에서 바뀐 사망일과 장소
"김설송을 정은의 협조자로 준비시켜라" 10.8유훈 작성자는 설송?
김여정 김설송 이설주 여인 3인방 '김정은 측근 경쟁' 가능성도

김정일이 지난 2011년 7월 평양 제일백화점을 시찰했을 때 수행했다고 알려진 김설송(사진 왼쪽). 북한 언론에 거의 노출되지 않아 진짜 김설송이냐, 다른 인물이냐 논란마저 있다.
◇수수께끼의 여성 김설송

김정일과 두 번째 아내 김영숙(홍일천을 첫 부인으로 보면 세 번째 처) 사이에는 장녀 설송(雪松)과 차녀 춘송(1975년생)이 있다. 설송은 1974년 12월 30일 생(1973년생 說도 있음)으로 이제 마흔을 훌쩍 넘겼다. 김정일의 아이들 중에서 김정남에 이어 나이가 가장 많고 딸로는 장녀.(홍일천의 소생 김혜경이 있지만 논외) 김정은의 이복 누이 설송은 정은보다 열 살 정도 많다. 설송의 이름은 일찍이 알려졌는데 김일성 주석이 지어주었고 그가 인정한 유일한 손녀였기 때문. 그녀는 정일과 영숙의 정식 결혼으로 태어났다 해서 북한 지도층 사이에서도 ‘정통 백두혈통’으로 인정받았다. 게다가 한때 김정일의 후계자로 외부 언론과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서 주목도 받았다. 그러나 그녀는 북한 공식보도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은 채 지금까지 짙은 베일에 가려있다.

김설송은 김일성종합대학 생물학부(정치경제학부라는 얘기도 있음)를 졸업했다. 조선일보는 2006년 2월 25일 당 간부였던 탈북자와 인터뷰 기사에서 “설송은 김 총서기의 호위와 일정관리를 맡고 있었다”고 전했다. 현지지도와 군부대 시찰에 동행할 때에는 인민군 제복에 ‘중좌’ 계급장을 달고 있었다. 이 탈북자는 또 “김 총서기가 공장을 시찰할 때 담당자와 악수를 하고 돌아서면 설송이 차에서 내려 소독한 수건으로 총서기의 손을 닦아 주는 것을 보았다”고도 했다.

설송은 2002년 8월 김정일의 러시아 극동지역 방문 때 수행했다고 전해진다. 한국 정보당국자에 따르면 유학생으로 프랑스에 체재한 사실도 확인돼 영어와 프랑스어를 구사한다. 그러고 보면 그녀는 국제 감각이 있는 여성인 것 같다.

설송은 보통의 북한여성과는 달리 머리카락이 허리까지 내려왔다. 키는 김 총서기보다 커서 165cm 정도이고 또렷한 이목구비로 미인 타입이었다. 2011년 3월 김정은과 함께 판문점 행사 참가가 정보당국에 포착됐는데, 그밖에 구체적 소식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부녀의 기념사진 촬영?

김설송으로 보이는 사진이 딱 한번 공개됐다. 김정일이 평양의 제일백화점 상품전시회장을 시찰했을 때 설송이 수행했다고 노동신문이 2011년 7월 보도했다. 그 뒤 서방 언론들이 이를 받아 잇따라 전했다. 설송으로 보이는 사진 속 여성은 검은 원피스 차림으로 통통한 몸매, 둥근 얼굴이고 특히 작은 눈은 아버지 김정일을 빼닮았다. 한국에서도 이 여성을 설송으로 소개했지만 일부에서는 노동당 경공업부의 어느 과장이라는 주장도 있어 불확실하다.

◇임종을 지키다

김설송은 김정일이 사망한 2011년 다시 주목을 받았다. 김정일 사망 정식 발표는 12월 17일에 돌연 이뤄졌다. 김정일이 지방시찰 열차 속에서 심근경색으로 그날 아침에 사망했다는 내용. 한국과 일본의 몇몇 언론이 제3국 복수 정보기관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한 것에 따르면 그는 그 하루 전날 설송의 자택에서 숨졌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김은 12월 16일 지방시찰 예정이었지만 컨디션이 안좋아 관저에서 오후까지 휴식을 취한 뒤 장녀인 설송의 집에 들렀다. 김정일은 거기서 김정은과 통화를 했고 그 뒤 상당히 기분이 나빠졌다. 스트레스 탓일까. 그는 저녁 때 음주 전 반드시 복용하는 약을 먹지 않은 채 과음했다. 정일은 “좀 누웠다가 돌아오겠다”며 침실로 들어갔고 한 시간 뒤 방에서 급히 벨이 울렸다. 그 벨은 김정일이 2008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늘 몸에 끼고 있던 것. 설송과 부관 등이 방에 들어갔을 때 그는 입 주변에 거품을 문 채 정신을 잃었고 주치의가 저녁 8시반께 사망을 확인했다.


당시 군과 당의 역학관계에 신경을 많이 썼던 김정일은 이 무렵 3남 김정은과 인사문제를 놓고 의견대립이 있었다. 확인된 이야기는 아니지만 신격화된 지도자의 사망 장소를 평양이라기보다 시찰지 지방이라고 밝히는 것이 적합하다고 판단해, 바꿔치기 했을 가능성이 크다.

◇설송, 아버지의 유서 10·8유훈을 작성했나

김정일이 죽기 2개월 전 측근에게 남겼다는 ‘10·8유훈’ 즉 유서의 일부가 공개됐다. 유훈은 약 40개 항목으로 돼 있고 내용은 국내외로 나뉘는데 그 가운데 설송이 등장한다.

유훈에 따르면 김정일은 국내적으로는 여동생 김경희에게 절대적 신뢰를 보였다. 유훈의 집행과 김정남을 비롯한 가족의 거취, 국내외 자금관리 책임 등을 여동생에게 맡긴 것. 이 유서 보도에 대해 북한의 공식반응은 없다. 김정은 생전의 어록을 간부들이 정리해놓은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김설송을 정은의 협조자로 준비시켜라.” 장녀 설송에 관한 이 부분이 특히 눈길을 끈다. 북한 사정에 정통한 어느 탈북자(이윤걸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소장)는 “설송은 어릴 적부터 관찰력과 판단력이 뛰어나 미래가 기대됐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김정일 병상에서 가장 오랫동안 병간호를 한 것도 그녀다. 게다가 설송은 김정일을 보좌해왔기 때문에 유서 작성을 건강상태가 안좋은 김경희를 대신해 그녀가 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설송은 특히 해외공작기관인 통일전선부에서 막강한 영향력이 있고 노동당은 그녀의 이름을 딴 무역회사도 만들었기에 수긍할만 한 대목이다.

홍익표 민주당 의원은 “김설송은 노동당 조직지도부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고 비리혐의가 포착된 장성택 숙청을 주도했다”며 “설송과 남편 신복남이 앞으로 권력의 핵심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한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설송은 알려지지 않은 측면이 많지만 김정일이 생전에 총애한 딸이어서 김정일의 비밀자금을 관리해온 중요인물”이라고 덧붙인다.

일부에서는 장성택 처형 이후 공식 장소에서 자취를 감춘 김경희를 대신해 김설송이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고 점친다. 김정은 체제가 지속될 경우 여정, 설송, 이설주 등 여인 3인방의 ‘측근 경쟁’도 예상해볼 수 있겠다. 아니면 자칫 정은의 형 정철처럼 이른바 ‘곁가지’ 취급을 당해 조용히 숨 죽이고 살아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고계연기자 kogy21@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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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최근 한반도 정세(외교 안보 등)를 좌지우지하는 핵심인물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은이라 하겠다. 잇단 탄도미사일 발사와 6차 핵실험, 그리고 섬뜩한 말 폭탄 주고받기로 긴장과 전쟁 위기감을 키우는 두 사람. 이제는 ‘선전포고 주장’까지 나오는 일촉즉발 험악한 형국이다. 트럼프에 맞서는, 30대 초반의 북한 최고지도자 김정은은 도대체 어떤 인물인가. 미치광이인가? 전략가인가? 그의 성장 과정과 인성 등을 들여다보고 북한의 과거 현재 미래 전반을 분석·예측해보는 일본 언론인 고미요지(도쿄신문 편집위원)의 원고를 입수했다. 국내 판권을 가진 서교출판사 김정동 사장이 번역서 출간에 앞서 콘텐츠 사용에 대해 양해를 해줬다. 일부 수정을 거쳐 정기적으로 옮겨 싣는다.

* 고미 요지(五味 洋治) : 1999년부터 2002년까지 쥬니치신문 서울지국에서, 2003년부터 2006년까지 중국총국에서 근무하며 북한 뉴스를 쫓아왔다. 올 2월 말레이시아에서 피살된 김정남과 7년 동안 주고받은 전자우편 대화록이 ‘안녕하세요, 김정남입니다’으로 지난 2013년 번역 소개되기도 했다. 현재 도쿄신문 편집위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6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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