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뇌병변 등 장애학생들이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는 서울 종로구 경운학교에 한 학생이 차에서 내려 고사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이두형기자
“괜찮아. 혼자 들어갈게.”
아버지는 자녀의 어깨를 토닥이며 돌아섰지만 잠시 뒤 혹시라도 몸이 불편한 자녀가 괜찮을까 하는 마음에 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그 자리에서 지켜봤다.
23일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서울특별시교육청 제15지구 제21시험장이 마련된 서울 종로구 경운학교. 이곳은 다른 수능 고사장과 달리 뇌병변 등 장애를 지닌 학생들이 시험을 치른다. 오전 7시10분께가 되자 하나 둘 수험생들이 찾기 시작했다. 재수생 자녀를 뒀다는 이영섭(59)씨는 “아이는 뇌병변 4급으로 심하진 않지만 약간 몸이 불편하다”며 “수험생을 둔 모든 부모가 그렇지만 아이에게 장애가 있는 만큼 별일 없이 시험을 잘 봤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23일 뇌병변 등 장애학생들이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는 서울 종로구 경운학교에서 시험을 치르는 자녀가 부모의 도움을 받아 학교에 들어가고 있다/이두형기자
오전 7시30분께가 되자 고사장을 찾는 수험생의 발길이 이어졌다. 거동이 크게 불편하지 않은 수험생들은 혼자 혹은 친구들과 함께 시험장을 찾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은 부모의 승용차나 대형 택시를 타고 왔다. 여느 수험장처럼 후배들의 뜨거운 응원은 없었지만 수능을 앞둔 긴장감은 이곳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고등학교 3학년이라는 김형석씨는 “부모님이랑 함께 오면 괜히 더 신경이 쓰일 거 같아 혼자 온다고 했다”며 “지진으로 시험이 일주일 연기돼 마음이 심란했지만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한다”고 각오를 내비쳤다. 대기업에 근무하다 3년 전 뇌종양이 발병해 퇴사하고 수능을 다시 본다는 ‘늦깎이’ 수험생 이길승(32)씨는 “뇌종양을 이겨내면서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삶을 살고 싶어졌다”며 “꼭 좋은 결과를 거둬 한의대에 진학하겠다”고 말했다.
수험생을 둔 부모들도 포항 지진으로 수능이 연기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잘 극복했으면 하는 바람을 보였다. 서울 송파구에서 왔다는 김정자(57)씨는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수능 시험을 볼 수 있는 곳이 한정적이라 집에서 한 시간 30분이 걸리는 여기까지 왔다”며 “수능이 일주일 미뤄지며 안 그래도 예민한 아이가 큰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평소 실력을 보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북구에서 왔다는 김승수(63)씨는 “늘 차분한 아이인 만큼 오늘도 잘 이겨낼 거라 믿는다”며 “날씨가 많이 쌀쌀한데 시험을 끝내고 나온 아이를 꼭 안아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두형기자 mcdjrp@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