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범선 동국대일산병원 재활의학과 교수
오래전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가 뇌졸중 재활치료를 받기 위해 한국으로 역이민을 온 노인. 선천성 기형으로 장애가 있는 자녀를 치료하기 위해 외국에 일자리를 얻어 떠났다가 합병증 치료를 위해 국내로 복귀한 부모.
우리나라의 재활치료가 세계적 수준임을 보여주는 사례다. 전체 재활치료에 투입된 의료의 양이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보다 적지 않고 재활의료의 수준도 높다. 그러나 국민들이 느끼는 국내 재활의료 수준은 그렇지 못하다. 기능회복을 목적으로 하는 급성기 재활치료와 기능유지를 목적으로 하는 만성기 재활치료가 비효율적으로 혼재돼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비효율 사례는 급성기 뇌졸중으로 종합병원에 입원한 환자가 충분한 재활치료를 받지 못하고 반강제적으로 퇴원 당하는 경우다. 이들 중 상당수는 시설·인력·장비가 상대적으로 열악한 요양병원에서 만성기 재활치료를 받는다. 전체 전문재활치료비의 50% 이상이 요양병원에서 쓰이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하지만 요양병원은 만성기 환자에게 기본적인 치료를 제공했을 때의 건강보험 수가(酬價·서비스 가격)만 적용받기 때문에 급성기 집중재활치료를 할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다.
부적절한 입원료 체감제도 문제다. 재활환자들은 2~3개월 간격으로 병원을 옮겨야 하는 재활난민 신세로 내몰리기 일쑤다. 급성기 병원에서 장기 입원환자의 입원료가 깎이는 불이익을 감수하고 재활치료를 장기간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 입원료 체감제는 장기간 치료가 필요한 재활환자에게는 부적절한 제도다.
건강보험이 재활치료에 상대적으로 낮은 중증도와 비현실적으로 낮은 보험수가를 적용하는 것도 재활의료의 질을 떨어뜨린다. 이 때문에 중증질환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대학병원에서는 재활환자 입원을 제한한다. 종합병원에서는 재활의학과의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재활환자 입원을 기피하고 있다. 만성기 재활의료를 책임져야 할 재활의학과 의원은 재활치료를 위해 시설·인력을 투입하면 수익성이 떨어지므로 재활치료를 포기하고 통증치료에 몰두하고 있는 실정이다. 소아 재활치료는 성인에 비해 시간과 기술이 더 많이 들지만 같은 보험수가가 적용돼 공공 재활의료기관에서조차 기피한다. 의료적 조치가 필요한 아동이 복지 서비스를 받는 기현상도 일어나고 있다.
재활의료의 질을 높이려면 재활치료 공급이 적절하게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보험수가 체계부터 개선해야 한다. 몇 퍼센트의 수가 인상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수가는 반드시 재활의료의 질로 평가되고 보상될 필요가 있다. 질 평가는 재활의학이 추구하는 환자의 기능향상과 사회복귀가 목표다. 보건복지부에서 올해 발표한 재활의료기관 시범사업은 보험수가 체계 개선의 시작이 돼야 한다. 이 사업은 회복기 재활환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으므로 재활치료 결과를 입원기간 단축, 기능개선, 가정복귀, 퇴원 후 지역사회 서비스 연계 등으로 평가하고 이에 따른 보험수가를 가감 지급해야 한다.
재활의료에 대한 수요는 날로 커지고 있다. 의학의 발달로 예전에 고치기 어려웠던 질환의 생존율이 증가했지만 상대적으로 장애를 갖는 사람의 수도 늘고 있다. 인구 고령화로 특별한 질병·사고가 없어도 노화로 인한 생리학적 변화 때문에 장애를 갖게 되는 노인도 많다. 노인에게 흔한 뇌경색, 무릎 관절증, 척추병증, 허리뼈·골반 골절은 모두 재활치료가 필요한 질환이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재활수요를 감당하려면 재활의료의 양을 늘리기보다 질을 높이는 데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재활치료 목적에 부합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면 더 큰 보상을 하는 방향으로 보험수가 체계를 개선해야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