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2년 베니스 영화제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여성 감독이 제작한 영화 ‘와즈다’가 이목을 집중시켰다. 자전거를 갖고 싶어 하는 10세 소녀 와즈다가 1,000리얄의 상금이 걸린 코란 경전 퀴즈 대회에 출전하는 과정을 그린 이 영화는 비평가들로부터 사우디 여성 인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유쾌한 시선으로 그려냈다는 찬사를 받았다.
사우디는 이슬람 국가 중에서도 여성의 인권이 가장 취약한 곳이다. 여성들은 대부분 외출할 때 이슬람권에서도 가장 엄격한 ‘니캅’과 ‘부르카’를 입는다. 눈과 손을 제외한 모든 신체를 가리는 의상이다. 사회생활은 철저하게 제한된다. 일을 하려면 남성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은행계좌 개설조차 남편의 동의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가족구성원이 아닌 남성과는 대화는 물론 함께 있는 것 자체가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여성에 대한 차별은 사우디의 건국이념인 ‘와하비즘(Wahhabism)’에서 비롯됐다. 18세기 이슬람 복고주의 운동의 주창자인 압둘 와하브의 이름을 딴 와하비즘은 코란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고 음주·도박·춤·흡연이나 화려한 치장 등을 철저히 금할 것을 주장한다. 특히 여성이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하려고 치장하는 것은 금기시하고 있다.
이런 사우디에서 최근 작지 않은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2015년에는 사상 처음으로 여성의 선거·피선거권을 허용한 데 이어 지난 9월에는 여성의 운전을 허용하는 칙령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내년 6월부터는 운전대를 잡은 여성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된다.
특히 11월30일과 12월1일 이틀간 홍해 연안 도시 제다에서는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광경이 연출됐다. 그리스 출신의 피아노 연주자 야니의 순회공연에서 여성 관객들이 남성 관객들 사이에 섞여 앉아 얼굴을 드러낸 채 박수를 치며 공연을 즐겼다.
사우디에서 불고 있는 이 같은 변화는 왕위 계승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온건·개방 정책과 무관하지 않다고 한다. 변화의 물꼬를 튼 사우디에서 조만간 길거리에서 환한 웃음을 드러낸 채 길을 걷는 여성들의 모습을 보는 것도 가능할 것 같다.
/정두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