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에서는 이러한 대출규제가 은행의 자율성을 해치는 부작용을 우려한다. 은행들이 자율적으로 서로 경쟁하다 보면 신용평가 역량 등도 자연스럽게 향상될 텐데 정부가 방향을 좌지우지하면서 이러한 기회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올해 초부터 가계대출은 성장한계에 부딪쳤다고 내부적으로 판단해 중소기업 대출 강화를 꾀해왔다”며 “정부가 기업 신용평가 시스템을 구축해주거나 기업대출 확대에 따른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현 정부 들어 속전속결로 이뤄지고 있는 최고금리 인하와 연체금리 조정, 카드수수료 인하, 실손보험료 인하 등 금리와 가격에 대한 개입 역시 자율성을 침해해 발전을 저해한다는 점이 가장 문제시된다. 한 금융권 고위관계자는 “가계대출에 대한 정부의 기조는 사실상 총량을 규제하는 거라 고객이 대출을 받겠다고 해도 ‘디마케팅(의도적으로 고객을 밀어내는 마케팅)’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이런 경우 한계에 다다른 고객은 들여다볼 필요도 없이 그냥 받지 않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금융권의 자발적인 창의와 혁신을 막는 대표적 규제로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한 은산분리 규제가 꼽힌다. 올 들어 KT와 카카오 등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이 주도하는 인터넷은행이 등장해 금리는 낮추고 한도는 높인 모바일대출과 소액 마이너스통장 같은 혁신적인 상품을 내놓자 시중은행들도 이에 뒤지지 않으려 ‘미투’ 상품을 출시하는 등 오랜만에 소비자금융을 놓고 경쟁이 후끈 달아올랐다. 하지만 연내 탄생이 기대됐던 세 번째 인터넷전문은행은 깜깜무소식이다. 오히려 한 금융사 최고경영자(CEO)는 “(제3의 인터넷은행은) 절대로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산업자본이 은행의 의결권 있는 지분을 4%까지만 보유하도록 하는 은산분리 규제가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경제신문이 금융사 CEO 및 임원 14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5명 중 3명(63.3%)이 ‘은산분리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인터넷은행이 위협적인 경쟁 상대일 수 있는 금융사마저 금융혁신을 위해서는 족쇄를 풀어줘야 한다고 보고 있음에도 정치권과 정부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같은 금융지주 내 자회사끼리도 경영관리 목적 외에는 고객정보(DB)를 공유, 활용하지 못하는 것도 시급히 해소돼야 할 대표적인 칸막이 규제로 꼽힌다. 비록 고객이 사전 동의한 경우에는 공유가 허용되지만 다양한 데이터를 모아 함께 분석하는 게 핵심인 4차 산업시대에는 한참 뒤떨어진 제도라고 업계에서는 한목소리로 주장한다. 익명의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지주사 출범 취지라면 고객에게 종합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맞지만 지금은 완전히 단절돼 빅데이터 활용도 막혀 있고 실시간 고객 응대도 힘들다”고 설명했다. 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등 내부 정보 공유를 막는 세 가지 법에 대해 업계에서는 한 글자씩 따와 “‘개망신’이 문제”라고 자조 섞인 이야기를 할 정도다.
이 같은 개인정보 관련 규제는 금융사가 비용절감과 업무혁신을 도모할 수 있는 클라우딩컴퓨팅 시스템 도입도 막고 있다. 금융권 정보의 80% 이상에 고객정보가 포함돼 있는데 고유식별정보와 개인신용정보는 클라우드 형태로 활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최근에야 화상통화 방식으로 허용하기로 가닥이 잡힌 로보어드바이저(RA) 회사의 비대면 일임투자 규제와 관련해서도 정부의 뒤늦은 대응이 아쉽다는 반응이다.
이뿐 아니라 새롭게 등장하는 금융시장도 금융당국의 보수적 접근으로 규제가 우선시되면서 발전이 제약되는 모습이 반복된다. 그동안 공백 상태였던 중금리대출을 해보고자 P2P금융사가 등장했으나 정부는 제도화 과정에서 개인의 투자액을 연간 1,000만원으로 묶어버렸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핀테크 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해서는 제도보완과 과감한 규제 완화가 필수”라며 “개인정보보호 정책이 산업 현실에 맞게 개정돼 발전의 저해요소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내부의 저항과 외부 규제를 모두 넘어설 때 본격적으로 변화에 속도를 낼 수 있다는 의미다. 하태형 수원대 특임교수는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살펴보는 게 아니라 애초부터 차단해버리는 것은 국내 금융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핵심 요인”이라며 “정부는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으로 접근하는 것을 멈추고 변화를 껴안을 수 있는 방안을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권형기자 buzz@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