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파식적]하회탈의 귀향

‘나는 사대부의 자손일세/ 나는 팔대부의 자손일세/ 우리 할배는 문하시중을 지내셨거든/ 우리 할배는 문상시대인걸/ 나는 사서삼경을 다 읽었네/ 나는 팔서육경을 다 읽었네/아니, 뭐? 팔서육경? 도대체 팔서는 어디에 있으며 그래 대관절 육경은 또 뭔가/ 난도 아는 육경 그것도 모르니껴… 팔만대장경, 중의 바라경, 봉사의 안경, 약국의 길경, 처녀의 월경, 머슴의 세경이요.’ 국가무형문화재 제69호 하회별신굿탈놀이 중 ‘양반·선비마당’에서 각각의 역할을 맡은 하회탈이 등장해 걸쭉한 입담과 신랄한 풍자를 벌이자 구경꾼들이 배를 잡고 웃는다. 취직 걱정도, 팍팍한 삶의 무게도 이때만큼은 저 멀리 사라진다.


오리나무로 만든 하회탈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탈이다. ‘별채탈’이 ‘별차(別差)’라는 벼슬 이름에서 따온 것이고 별신굿 대사 중 ‘문하시중(門下侍中)’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고려 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무려 700년을 넘었으니 산전수전을 다 겪었을 터. 원래 각시·중·양반·선비·초랭이·이매(하인)·부네(기녀)·백정·할미·총각·별채·떡다리 등이 있었지만 총각과 별채·떡다리가 사라져 지금은 9개만 전하는 것이 그저 아쉬울 뿐이다.

과거 하회탈은 신성한 존재였다. 허 도령이 신의 계시로 다양한 탈을 만들다 사랑하는 여인이 이를 훔쳐보자 피를 토하고 죽었다는 전설부터 그렇다. 탈을 만지다가 갑자기 쓰려진 사람의 얘기도 전해진다. 하지만 근현대에 들어서면서 모든 게 바뀐다. 일제의 민속놀이 중단과 해방 후 별신굿을 지원하던 양반들이 몰락하면서 하회탈과 탈놀이의 위상도 예전만 못한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하회탈의 섬세함과 풍자·해학의 정신까지 사라질 수는 없다. 1964년 하회탈은 국보로 지정돼 국립박물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하회탈이 지난해 12월 고향인 안동 시립민속박물관으로 돌아왔다. 무려 53년 만의 귀향이다. 하지만 아직 시민들과 만나기에는 이르다. 탈이 훼손되지 않도록 모든 시설을 완벽하게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6월 하순이면 일반공개가 가능하다고 하니 경북 지역민과 안동시민의 설렘은 보지 않아도 알 것 같다. 고향을 찾은 하회탈의 웃음이 더 짙어지겠다. /송영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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