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이 10년 만에 사옥을 이전할 것으로 보인다. 금호아시아나는 독일계 자산운용사인 도이치자산운용에 광화문 사옥을 매각하기로 결정하고 현재 매각 조건을 협의 중이다. 금호아시아나 측에서는 사옥 이전을 포함한 구체적인 매각 조건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말을 아끼고 있지만 광화문 사옥 맞은편에 위치한 대우건설(047040) 신문로 사옥으로 이전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본지 3월 15일자 12면 참조
금호아시아나의 사옥 이전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것은 오피스 투자 및 임대차 시장 상황과 관련이 있다. 금호아시아나 광화문 사옥 맞은편에 위치한 대우건설 신문로 사옥은 지난 2008년부터 대우건설이 사용하고 있는데 대우건설 역시 10년 만에 사옥 이전을 앞두고 있다. 대우건설의 임대차 기간은 올해 말까지이며 연장 가능성이 낮다.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인 세운재정비촉진지구 6-3구역 오피스(더유니스스타타워)가 내년 4월 준공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더유니스스타타워 시공사인 대우건설은 33%의 지분을 투자했으며, 책임준공 후 10년 간 임대를 해야 한다. 더유니스스타타워는 올 상반기 매각이 진행될 예정이며, 매각 측은 대우건설이 전체 빌딩의 절반을 10년간 임차하는 조건으로 매수자를 구할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이에 따라 대우건설도 그간 도이치운용과 임대차 기간을 단기 연장하는 방향으로 논의를 진행해 왔다.
내년에 텅텅 비는 도이치소유 ‘대우건설 신문로 사옥’ 이전 가능성 높아
금호아시아나 광화문 사옥은 1년 단기 임차 계약 맺을 듯
예상대로 대우건설이 사옥을 이전하게 되면 현재 신문로 사옥은 100% 공실이 발생하기 때문에 새 임차인을 구해야 한다. 그 유력한 후보로 금호아시아나가 거론되고 있다. 그 이유는 금호아시아나 광화문 사옥 인수를 추진 중인 도이치운용이 대우건설 신문로 사옥의 소유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도이치운용은 지난 2013년 우정사업본부와 함께 부동산펀드로 대우건설 신문로 사옥을 인수했다. 부동산펀드의 만기는 10년이며, 향후 재매각 시 투자금을 원활하게 회수하기 위해서는 공실 리스크를 해소해야 하는데 최근 도심 오피스 시장의 공실률이 10%를 웃도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새 임차인을 구하기가 만만치 않아 보인다.
이런 이유로 시장에서는 도이치운용이 금호아시아나 광화문 사옥을 매입하면서 금호아시아나를 대우건설 신문로 사옥으로 이전시키는 방안을 추진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금호아시아나 광화문 사옥의 매각가격이 다소 낮을 것으로 예상되는 점도 이 같은 예상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지난 2008년 준공된 금호아시아나 광화문 사옥은 연면적 6만695㎡, 지하 8층~지상 29층 규모의 우량 오피스 빌딩으로 과거부터 많은 투자자들이 관심을 가졌다. 여기에 광화문에 위치한 센터포인트가 지난 2016년 3.3㎡당 2,600만원, 현재 매각이 진행 중인 더케이트윈타워가 3.3㎡당 2,800만원 이상에 거래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금호아시아나 광화문 사옥도 최소 4,000억원 후반에서 5,000억원 초반 수준에 거래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매각 과정에서 거론되는 가격은 4,000억원 초중반 수준으로 예상보다 낮다. 이처럼 낮은 가격에 거래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에는 금호아시아나가 사옥을 이전하면서 공실이 발생할 것이라는 가정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현재는 금호아시아나가 사용하고 있어 안정적인 임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코어(Core) 자산으로 분류되지만 금호아시아나 이전으로 100% 공실이 발생하면 향후 임차인 유치 등을 통해 가치를 끌어올려야 하는 밸류애드(Value add) 자산이 되며, 그만큼 매각 가격이 낮아질 수 있다. 여기에 박삼구 아시아나그룹 회장의 애착이 큰 사옥인 만큼 향후 되살 수 있는 권리 등을 계약 조건에 포함시킬 가능성도 있다. 이런 여러 가지 상황 등을 감안하면 현재 거론되는 금호아시아나의 사옥 이전설과 광화문 사옥의 다소 낮은 매각가가 이치에 맞아 떨어진다. 대우건설의 신문로 사옥 임차 기간 등을 감안하면 금호아시아나는 도이치운용과 1년 정도 광화문 사옥 임대차 계약을 맺을 것으로 예상된다. 도이치운용과 금호아시아나는 다음달에 계약을 맺을 것으로 전망된다.
대우건설 신문로 본사 사옥 /사진제공=대우건설
도이치운용과 금호그룹의 긴 인연도 눈길과거 대우건설 신문로 사옥, 회현동 옛 아시아나빌딩 등으로 엮여 있어
대우건설 신문로 사옥은 금호그룹과도 사연이 깊은 건물이다. 지난 2000년 준공된 대우건설 신문로 사옥은 과거 금호아시아나 계열사였던 금호생명이 사용했던 건물이며, 현재 임차인인 대우건설은 한 때 금호아시아나 계열사이기도 했다. 이후 2008년 말 금호아시아나는 대우건설 신문로 사옥을 리츠자산관리회사(AMC)인 제이알투자운용에 매각했으며, 대우건설은 지난 2013년 사옥을 되살 수 있는 권리인 콜옵션을 도이치운용에 매각했다. 이번 금호아시아나 광화문 사옥과 대우건설 신문로 사옥 외에도 금호와 도이치운용은 오피스 시장에서 인연이 깊다. 금호아시아나는 2000년에 서울 중구 회현동에 위치한 프라임타워(옛 아시아나빌딩)을 싱가포르투자청(GIC)에 매각했으며, 이후 GIC로부터 프라임타워를 사들인 곳이 바로 도이치운용이다. 이러한 인연 덕분인지 이번 금호아시아나 광화문 사옥 매각 과정에서도 경쟁 입찰을 거치지 않고 금호아시아나 측에서 도이치운용에 직접 연락해 매입 의사를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삼구 회장의 무리한 몸 집 불리기가 부메랑으로
한편 금호아시아나는 이달 중순 광화문 사옥 매각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진 바로 다음날 CJ대한통운 지분을 블록딜로 처분하기로 하고, 전환사채(CB) 발행을 추진하는 등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자금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상황이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의 과거 무리한 인수·합병(M&A)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현재 채권단인 산업은행 주도로 매각이 진행되고 있는 금호타이어는 최근 중국 기업인 더블스타에 매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노조와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등 박 회장의 경영실패가 남긴 후폭풍이 크다. 박 회장의 애착이 컸던 것으로 알려진 금호아시아나 광화문 사옥을 결국 매각하는 것도 금호아시아나가 지금 얼마나 어려운 상황인지를 보여준다. 박 회장은 지난 2008년 사옥 준공을 앞두고 열린 창립기념식에서 “새 사옥 완공을 기점으로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자”고 말하기도 했다
/고병기기자 staytomorrow@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