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이 현대모비스(012330)와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에 미화 10억달러(약 1조500억원) 이상의 보통주를 보유하고 있다고 밝힌 것은 현대차(005380)그룹이 지난달 28일 내놓은 지배구조 개편 방안의 직접 이해당사자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향후 지배구조의 정점에 서게 될 현대모비스에 대한 투자를 명확히 했지만 분할 및 합병 대상인 현대글로비스 지분은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분할 및 합병에서 반대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다만 지분율이 낮은 만큼 적극적인 행동보다는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주주 환원 정책을 강화해 달라고 요구할 것이라는 전망이 더 많다.
현대차는 엘리엇의 지분 투자 발표 직후 “향후 기업가치를 제고하고 투자자 이익을 높이는 방향으로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며 국내외 주주들과 충실히 소통할 계획”이라고 공식 입장을 내며 대응했다. 아울러 ‘지속 가능한 기업구조를 향해 첫발을 내디딘 점을 환영한다’는 엘리엇의 입장에 초점을 맞추고 엘리엇이 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작업에 딴지를 걸 가능성은 낮을 것이라고 봤다.
전문가들도 엘리엇의 이날 발표의 목적을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주주들을 좀 더 챙겨달라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대해 공식 반대 입장을 내며 주총에서 표 대결까지 유도했던 것과 직접 비교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엘리엇이 밝힌 투자 규모 1조500억원은 현대모비스와 현대차, 기아차(000270) 지분을 각각 1.4% 가량 살 수 있는 돈이다. 엘리엇은 현대차와 기아차 지분율은 1% 미만인 반면 현대모비스 지분은 2% 가량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진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방안에 대해 구체적인 주주환원정책이 부족하다는 것이 시장 전반의 목소리”라면서 “배당 확대나 자사주 소각을 통한 주주환원정책을 요구할 수 있고, 자기자본이익률(ROE)을 중심으로 한 구체적인 경영 로드맵을 제시하라는 요구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내달 예정된 현대모비스의 주주총회에서 엘리엇이 인적분할에 반대하거나 현대글로비스와의 합병 비율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현대차그룹은 지배구조 개편 방안을 발표하면서 현대모비스의 모듈·AS 사업부문을 인적 분할한 후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합병 비율은 0.61대1로 산정했는데 시장에서는 합병 비율이 현대글로비스에 다소 유리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엘리엇이 현대모비스와 현대차, 기아차의 주요 주주라고만 밝혔을 뿐 현대글로비스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계열사가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을 모두 인수할 계획인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 부자(父子)에게는 현대모비스의 주가가 낮을수록, 현대글로비스의 주가가 높을수록 유리하다.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매각해 현대모비스 인수에 나설 방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엘리엇은 현대모비스 편에 있다는 점을 명시했다. 현대모비스 주주의 입장에서 인적분할 자체를 반대하거나 합병비율을 재산정해야 한다고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물론 현재 지분율만으로는 표 대결에서 엘리엇이 이기기는 힘들다. 현대모비스의 인적 분할 안건이 주총에서 통과되려면 ‘의결권 있는 출석주주 3분의 2 이상 동의와 발행주식 총수 3분의 1 이상 참석 및 동의’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현대차그룹의 현대모비스 우호지분은 정 회장 지분 약 7%에 기아차(16.9%), 현대글로비스(0.7%), 현대제철(5.7%) 등 30% 가량 된다. 그러나 엘리엇이 주총 전 추가로 현대모비스 주식을 사들이고 외국인 투자자들을 상대로 분할 반대 세력을 형성한다면 현대차그룹으로서는 부담이 커질 수 밖에 없다. 현대모비스의 외국인 지분율은 48%에 이른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엘리엇이 현대차그룹과 사전 조율을 하고 투명경영위원회 등을 통해 압박하다가 만족하지 않으면 결국 주총에서 반대할 소지가 있다”면서 “엘리엇이 나서면 현대모비스 외국인 투자자들이 동조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조민규기자 cmk25@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