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카드사는 직장인 김모씨가 백화점에서 한 달에 얼마만큼 소비했고, 주로 옷을 사는 데 카드를 결제했다는 사실을 결제정보를 통해 어느 정도 파악이 가능하다. 그러나 블라우스나 셔츠 등 구체적으로 어떤 옷을 구매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가 없다. 자세한 품목 정보까지 고객 동의를 받지 않아서다. 고객 동의가 없어도 통계 데이터나 연구 목적 등 공익에 부합하다면 비식별(익명) 처리된 정보를 받아 볼 수 있지만 김씨를 알아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비식별 정보도 카드사들이 활용하기는 여간 어렵지 않다. 지난해 11월 참여연대를 비롯한 12개 시민단체가 데이터를 이용한 20개 기업과 4개 공공기관을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고발해서다. 비식별처리 됐다 하더라도 기업이 보유한 원 데이터와 결합하는 등의 방식으로 재식별화의 위험이 크다는 이유 때문이다.
최종구(사진) 금융위원장이 최근 들어 금융분야 데이터활용 규제 완화에 의욕적으로 나서고 있지만 의욕만큼 현장의 체감도는 크게 변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술에 배부를 수 없다고 치더라도 제대로 된 규제 완화를 위해서는 분산돼 있는 개인정보 관리 감독 체계 일원화와 관련법 개정 등 본질적인 접근이 필요한데 첫걸음부터 변죽만 울리고 있다는 것이다.
12일 카드사 관계자는 “수익성 악화를 겪고 있는 카드사들은 ‘빅데이터’ 활용을 통해 미래 성장 돌파구를 찾고 있다”며 “고객 개인에 대한 유의미한 정보를 취합해 1인에 적합한 마케팅을 해야 하는 데 현재로서는 이 같은 빅데이터 활용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카드사가 대형마트나 백화점 등 유통사와 빅데이터 공유 협약을 맺어도 고객별로 어떤 부문에서 소비가 이뤄졌는지 구체적인 정보를 얻기가 어렵다. 다른 관계자는 “금융 당국이 의욕적으로 데이터활용 규제에 나섰지만 관련 법 개정에 속도가 붙지 않으면 이전과 다를 바 없는 도돌이표가 될 것”이라며 “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법 등 각각 다른 규제가 적용되는 문제를 풀어야 실질적인 효과를 볼 수 있는데 금융 당국이 처음부터 큰 그림을 갖고 접근하는 게 필요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보험사들도 건보공단 의료 빅데이터를 보험사와 공유하도록 해야 개인맞춤형 보험개발이 가능해지는데 당국이 최근 발표한 ‘금융분야 데이터활용 및 정보보호 종합방안’으로는 반쪽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보험 업계 관계자는 “금융 당국이 규제 일변도에서 벗어나 빅데이터 활용 규제 완화에 나서는 것 자체가 긍정적”이라면서도 “관련 규제법 개정을 위한 부처 간 협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는 반쪽에 그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행정안전부·방송통신위원회·금융위·개인정보보호위원회 등으로 분산돼 있는 개인정보 감독기구를 일원화해 민감한 정보 보호 문제를 책임질 컨트롤타워 개설이 우선시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오병일 정보인권연구소 연구위원은 “개인정보의 상업적 활용에 대한 불안감을 불식시킬 수 있는 정보보호에 대한 관리 감독 체계 일원화 부분에 대한 논의가 관련 부처끼리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민정기자 jeo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