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물’(2015)로 304만 관객 동원에 성공하며 전매특허 말맛 코미디를 인정받은 이병헌 감독이 ‘바람 바람 바람’으로 돌아왔다. 단순한 웃음을 넘어선 현실 공감 코미디로 ‘코미디 장르’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이병헌 감독의 인장이 새겨진 작품이다.
지난 5일 개봉해 117만 누적 관객수를 기록 중인 ‘바람 바람 바람’ 은 개봉 전부터 큰 화제를 모았다. ‘바람’을 소재로 다룬 영화 란 점도 호기심을 자극했지만, 이병헌 감독이 전작 ‘스물’보다 스무살은 더 많지만 여전히 철 없는 어른들과 함께 돌아와 신선한 웃음을 선보인 것.
이병헌 감독/사진=조은정 기자
‘바람’ 앞에 마주하게 된 인물들 간의 얽히고설킨 관계를 솔직하고 대담하게 영화 안에 담아냈다. 이병헌 감독은 “톤 조절이 굉장히 중요한 영화였다. 좀처럼 쉽게 드러내지 못하는 감정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영화다.”라고 밝히며 “쥐고 있는 것을 버리지 않고 다른 것을 취하려고 하는 뻔뻔함에 대해 다룬 영화”라고 설명했다.
‘바람 바람 바람’의 가장 큰 강점은 한 명만 있어도 웃음이 절로 나는, 매력 넘치는 캐릭터가 넷이나 등장한다는 것이다. 20년 경력의 ‘바람의 전설’ ‘석근’(이성민), 어쩌다 보니 ‘바람의 신동’이 된 ‘봉수’(신하균), 태풍도 막아내는 ‘바람막이’ ‘미영’(송지효), 철벽도 무너뜨리는 ‘바람의 여신’ ‘제니’(이엘)까지 한 명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네 명의 캐릭터가 한 데 모여 이뤄낸 ‘남매 케미’, ‘부부 케미’, ‘형님-매제 케미’, ‘여여 케미’는 관객들에게 다채로운 웃음을 선사, ‘바람 바람 바람’의 흥행을 견인하고 있다.
그럼에도 ‘바람’ 이야기를 코미디로 풀어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잘못 하면 불륜을 미화하는 영화로 보일 수 있는 법.
이병헌 감독은 “사실 작정하고 웃겼으면 더 웃길 수 있었는데 그게 아니라 조율이 필요했다“고 털어놨다.
“부정적인 소재를 코미디로 풀어낸다는 것에 대해 부담이 컸다. 해석의 여지가 다양하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부정적인 소재와 코미디를 접목하는 작업도 작업자 입장에선 도전이고 모험이다. 사실 작정하고 웃기는 영화보다 더 조율을 요했다. 웃기는 것보다 코미디 감성을 억누르고 감정에 더 신경 쓴 영화다.”
‘바람 바람 바람’은 2011년 개봉한 체코 영화 ‘희망에 빠진 남자들’을 원작으로 한 리메이크 작품. 불륜이라는 상황에 충실한 원작과 달리 인물들의 감정에 집중했다.
이병헌 감독은 ”제작사 대표님께서 제안해주셨을 때 처음에는 고사했다, 감정보다는 상황 위주의 코미디여서 결이 많이 달랐다. 보편적인 우리나라 정서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지점이 많았다“라고 밝혔다.
12분짜리의 단편영화 ‘냄새는 난다’(2009)로 인상 깊은 연출을 선보이며 감독에 데뷔한 이병헌 감독은 ‘과속스캔들’(2008), ‘써니’(2011), ‘타짜-신의 손’(2014)의 각색을 맡으며 대중들에게 특유의 재치 넘치는 ‘말맛 코미디’를 알리기 시작했다. 2012년에는 독립영화 ‘힘내세요, 병헌씨’로 제38회 서울독립영화제 관객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바람 바람 바람’은 이병헌 감독의 전매특허 찰진 말맛이 돋보이는 대사들로 중무장했으며 ‘스물’ 에서는 볼 수 없었던, 어른들만이 할 수 있는 솔직하면서도 능글맞은 대사들을 선보인다.
”대사 톤이나 표정, 리액션 하나 하나에도 선을 정하면서 갔다. 감정을 하나라도 놓치면 정말 욕만 먹고 끝나는 영화가 되겠다 싶어서 애를 많이 먹었다. 각색하면서 후회도 많이 했다“
그래서 그럴까. 그는 “시간이 지났을 때 어떤 작품으로 기억에 남을지 돌아보기도 싫다”고 털어놓기도. 그럼에도 “100프로는 아니겠지만 되게 만족하고 있다. 내가 언제 이런 작품을 해볼까 싶다. 이 영화를 끝냈다는 성취감이 있다. 이 작품이 제 인생작이 안 됐으면 한다. 하하” 고 복잡한 심경을 전했다.
이병헌 감독/사진=조은정 기자
이번 영화가 매력적인 점은 ‘어른들을 위한 코미디’ 란 점. 여전히 철부지인 어른들의 모습을 공감되고 코믹하게 그려내며 ‘어른들을 위한 코미디’의 진면목을 선사한다.
이병헌 감독은 “‘스물’처럼 재밌게 웃을 수 있지만, 다 웃고 나서 여운이 깊게 남을 작품이다. 외로움, 책임감 등 여러가지 감정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는 영화”라며 전작과의 차별점을 전했다.
분명 코미디의 피가 흐르는 감독이다. 그의 코미디 영화는 계속 만날 수 있을 듯 하다. “잘하는 걸 계속 해야죠. 코미디가 저랑 맞는 것 같다. 코미디 작업하면 저 혼자 웃는 날도 많다. 제가 그나마 조금 잘 하는 것 같고, 아직까지는 그렇다. 확실하게 말 할 수 있는 건 호러 영화는 절대 못하겠다는 거다. 잔인한 장면을 아예 못 보는 편이다. 이 고통을 왜 느끼는거 싶더라. 코미디를 만들어 가는 게 좋다.”
한편, 이병헌 감독은 차기작 ‘극한직업’의 촬영을 시작하며 바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