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는 작년부터 완연한 회복 흐름을 타고 있습니다. 세계 경제성장률은 2016년 3.2%에서 지난해 3.8%로 껑충 뛰었습니다. 올해는 4%대 진입이 가능하다는 전망도 나옵니다. 더 고무적인 건 고용이 뒷받침되는 성장이라는 점. 미국 민간경제조사기관 콘퍼런스 보드(Conference Board)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고용 증가율은 2014년 1.4%, 2015년 1.5%, 2016년 1.6%, 지난해 1.9% 등 꾸준히 상승하고 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이런 트렌드에 역행하고 있습니다. 경제는 성장하는데 고용은 늘지 않는 ‘고용없는 성장’이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콘퍼런스 보드에 의하면 한국의 고용 성장률은 2014년 2.1%, 2015년 1.3%, 2016년 1.2%, 2017년 1.2% 등 뚜렷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고용 성장률을 국제 비교해보면 역주행 현상이 더 극명하게 나타납니다. 콘퍼런스 보드가 최근 발표한 ‘총경제 데이터베이스:생산량, 노동, 노동생산성, 1950~2018’ 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의 고용 증가율은 2014년만 해도 세계 123개국 중 46위였으나 2015년 80위로 급락했습니다. 2016년도 80위였고 지난해는 82위로 더 떨어졌습니다. 올해는 고용 증가율이 전년 1.2%에서 0.8%로 하락하고 순위는 86위까지 미끄러질 전망입니다.
소위 ‘선진국 클럽’이라 불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회원국끼리만 비교해봐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OECD 내 한국 고용 증가율은 2013, 2014년에 9위, 8위였으나 2015~2017년 22위, 25위, 27위에 그쳤습니다.
노동생산성 역시 수년째 OECD 35개국 중 27~28위 수준에 정체돼 있습니다. 지난해 한국의 시간당 노동 생산성은 36.8달러로 미국의 절반(51%)에 그쳤습니다. 미국 노동자가 1시간에 10이란 결과물을 만들어낸다면 한국은 같은 시간에 5밖에 못 만든다는 얘깁니다.
특히 생산성 증가율이 갈수록 떨어집니다. 한국의 노동생산성 증가율은 2008년 6.5%로 OECD 국가 중 1위를 차지했으나 2012년엔 1.6%(11위)까지 깎였습니다. 2016년엔 2.3%로 회복되는 기미를 보였지만 지난해 1.9%로 뒷걸음질쳤죠.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요. 표면적으로는 조선, 자동차 등 주력산업이 구조조정 등으로 일자리가 줄어든 영향이 큽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반도체 등 전자부품과 조선, 자동차 분야는 2010~2013년 연평균 4만6,000명 일자리가 늘었는데 2014~2017년엔 2만명이 줄었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근본적인 원인은 보다 구조적인 데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경직된 노동시장과 산업 발전을 가로막는 규제 등 고질적인 문제를 방치한 탓이라는 겁니다. 노동경직성과 규제 장벽은 국제통화기금(IMF)와 OECD 등 해외에서도 매년 우리 경제의 문제로 지적하는 사항이기도 합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고용과 생산성이 같이 부진한 건 노동시장이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는 뜻”이라며 “정부가 노동·규제개혁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이해관계자 설득이 어렵다는 이유로 미루는 바람에 고용 없는 성장이 고착화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한국은행의 한 관계자는 “한국은 한 번 사람을 뽑으면 웬만하면 평생 고용해야 하고 임금 조정도 어렵다”며 “기업 간 경쟁이 갈수록 심해지는데 노동시장이 이렇게 경직돼서야 어느 기업이 고용을 늘리려 하겠느냐”고 꼬집었습니다.
혁신 인재와 고부가가치 신산업을 제대로 못 키우고 불공정 거래 관행이 개선되지 않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습니다. 김주훈 한국개발연구원(KDI)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몇 년간 전문·과학 및 기술서비스와 정보산업 등 분야 고용 증가세가 눈에 띄게 꺾였다”며 “지식기반 산업이 규제와 불공정 거래 관행 등 때문에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현 정부 들어 일자리 불임 현상이 더 악화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정부가 ‘일자리 정부’를 자처하면서도 일자리에 역행하는 정책들을 쏟아내는 탓입니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법인세 인상, 양대 노동지침 폐기 등이 대표적입니다. 여기에 최근 정부가 내놓은 근로시간 단축 방안은 방향성은 맞으나 너무 급진적이어서 부작용만 불거질 거란 우려도 나옵니다.
규제 완화 역시 구호만 요란하고 결과물이 없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유통·통신 등의 분야는 오히려 규제장벽을 높이 올리는 추세죠. 오정근 건국대 IT금융학부 교수는 “추가경정예산 등 단편적인 정책만 펼 게 아니라 시장에서 일자리를 원활하게 만들 수 있게 근본적인 구조개혁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서민준기자 morando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