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연극연출가들은 ‘내 역할은 무대에 조명이 켜지기 전까지’라고 말한다. 그 다음은 전적으로 배우들의 몫이다. 세상 모두가 다 아는 ‘로미오와 줄리엣’도 무대 위에서 배우가 배역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 순간 작품의 생명은 끝나는 법이다.
‘라이브’의 세계관을 창조한건 작가 노희경이지만 숨결을 불어넣은건 배우들이었다. 영화를 통해 얼굴을 알린 배성우를 비롯해 경찰시보를 연기한 이광수, 정유미 등 작품을 ‘인생작’이라 불러도 손색없을 만큼의 연기를 보여준 배우들이 많았다. 늘 믿고 보는 연기를 보여주는 성동일과 배종옥, 장현성과 조연으로 익숙한 이얼까지 모든 배우들이 확실하게 눈도장을 찍었다.
단연 돋보인건 배성우였다. 그는 연기하되 연기하지 않았다. 배성우의 오양촌은 표현력을 논하기보다 작품 해석과 이를 받아들이는 능력을 따져야 한다. 전형적인 상황, 캐릭터 연기에서 벗어난 그의 모습은 그냥 오양촌이었다.
배성우의 연기는 연극에서부터 그랬다. 비교적 최신작인 ‘가을 반딧불이’에서 저수지 보트선착장에 얹혀사는 40대 실직자를 연기할 때도, ‘클로저’에서 마초적인 의사를 연기할 때도 배성우는 늘 배성우였다.
연극무대에서 기틀을 세운 배우들은 캐릭터를 분석하면서 옷을 입듯 편하게 그 인물을 입어버린다. 인물을 설명할 때 “오양촌이라는 친구는…”이 아니라 “오양촌은” 또는 “저는”이 되는 식이다. 자신의 개성은 유지한 채 인물의 특성을 살리는 연기는 보는 이들을 빠져들게 만든다. 작품을 보며 자연스럽게 배성우를 오양촌이라 부르게 된다.
초반에 억울한 징계를 이기지 못해 자신을 ‘개새’로 부르던 그가 어머니의 존엄사로 심경 변화를 겪게 되고, 안장미(배종옥 분)에게 꾹꾹 눌러뒀던 속마음을 털어놓는 장면은 백미였다. 감정을 던지고 받는 과정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다. 마지막회 사명감을 논하는 장면은 홀로 이끌어가야만 했다. 그는 담담하게 시작해 분노하다 결국 절규했다. 드라마에서 단시간에 이런 감정변화를 모두 담아낼 수 있는건 그 인물에 보통 빠져서는 불가능하다.
미디어가 배성우라는 이름을 처음 불렀던 작품은 영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이었다. 주인공의 시동생으로 출연한 그는 요상한 잎을 씹으며 어딘가에 취한 표정으로 형수를 강간하는 괴상한 인물이었다. 이미지가 너무 강렬했던 탓인지 이후 코믹한 캐릭터로 눈을 돌렸고, ‘베테랑’ 이후 감초 조연 역할로 자리잡았다.
재치있는 주조연급 배우들은 이 위치에서 정체기를 맞는다. 이를 넘어서느냐, 정착하느냐 기로에서 몇몇은 새로운 시도를 해보지만 고정된 이미지를 깨기가 쉽지 않다. 물론 유해진처럼 이를 넘어 주연으로까지 입지를 굳히는 경우도 종종 있다.
배성우는 새로운 시도에 성공했다. 본인의 역량과 노희경의 극본, 훌륭한 배우들과의 호흡이 아주 잘 맞아 떨어졌다. 오양촌의 감정이 변하는 순간마다 출중한 배우들이 양 옆과 뒤에서 그를 잘 받쳐준 덕이 크다. 세간의 말마따라 배우들의 연기에 구멍이 없었다.
과거 연극 ‘클로저’ 인터뷰에서 그는 연기비결을 묻는 질문에 “나를 속여야 한다. 내가 속지 않으면 관객도 속지 않는다”고 말했다. 어떤 인물을 연기해도 배성우는 배성우지만 또 배성우가 아닌 이유가 이 한마디에 압축된다. 아버지 이순재가, 아내 배종옥이, 지구대장 성동일이, 팀장 장현성도 그렇다.
좋은 작가와 동료 배우들이 멍석을 잘 깔아줬고, 배성우는 신나게 춤을 췄다. 시청자들은 배성우보다 오양촌에 환호한다. 그럼 됐다. 배우에게 이보다 더 큰 찬사가 어디 있을까.
/김진선기자 sest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