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화 한 켤레 후다닥 신고 문밖으로 달려나가면 당신이 있는 곳이 바로 자유.” 미국 작가 존 제롬은 러닝을 ‘자유’라는 한 단어로 표현했다. 학업·취업·직업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청춘이 러닝화 끈을 조여 매는 이유다. 늦은 밤 서울 마포구 와우산길에서 가쁜 숨을 을 몰아쉬며 달리는 그들은 달리는 이유와 목적을 찾기보다 달린다는 것 자체에 만족한다. 러닝의 매력은 ‘혼자’서 ‘함께’ 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청춘들이 ‘러닝크루’를 통해 새로운 달리기 문화를 만들고 있다. 마라톤이라는 말보다 가벼운 ‘러닝’, 동호회라는 말보다 젊은 ‘크루’가 합쳐져 만들어진 러닝크루는 마라톤동호회와 다른 유연한 조직이다. 기성세대가 지적하는 부족한 연대의식은 젊은 러너들이 각자의 개성을 갖고 수평적으로 소통하며 달리는 데 도움이 된다. 회사나 학교·지역을 중심으로 만들어지면서 선후배 관계로 얽힌 마라톤동호회 등이 규율을 강조했다면 모두에게 열려 있는 러닝크루는 가벼운 관계일 뿐이다. 굳이 회원일 필요도 없다. 게스트로 참여해 오늘 하루 만나 같이 달리고 헤어지면 그만이다. 젊은층의 개인주의 성향이 함께 달릴 뿐 서로를 구속하지 않는 새로운 러닝 문화를 만들었다. 운동 후 술자리로 이어지는 뒤풀이도 없다. 결국 술이 술을 먹고 끝나버리는 우리 회식문화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러닝크루는 달리기를 할 뿐이다.
러닝크루의 교류는 인터넷만으로 이뤄진다. 전화통화하고 약속 잡고 만나는 관계는 애초에 없다. 일정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공지되고 신청부터 후기 공유까지 모든 게 사이버 공간에서 이뤄진다. 혼자이고 싶지만 연결되고 싶은 청춘들의 욕구가 반영됐다. 인스타그램에서 ‘#러닝’을 검색하면 혼자 달리고, 함께 달리며 찍은 사진이 수두룩하다. 그들에게 러닝은 달리기로 시작해 게시물 전송 클릭으로 완성된다. 누구는 SNS를 인생의 낭비라고 했지만 누구는 SNS로 인생을 준비할 수 있다. 달리는 순간에 느낀 모든 감정을 남길 수는 없지만 무언가를 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주류 미디어에서 ‘잉여’로만 소비되는 청춘의 자존감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보여주는 달리기는 패션에 민감한 청춘들의 자기표현으로도 이어진다. 과거 마라톤대회 러너들이 달리기 기록으로 극기(克己)하려 했다면 이제 거기에서 젊은 러너들은 자신을 뽐내고 즐겁게 놀 뿐이다. 달리기를 잘하고 아름답기까지 한 일반인 러너들은 ‘런예인(러닝+연예인)’으로 불리며 SNS에서 화제가 되기도 한다. 문화는 산업을 잉태한다. 러닝에서도 나이키·아디다스 등 글로벌 브랜드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러닝크루와 함께 달리면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마라톤대회 개최부터 기존 러닝크루와의 컬래버레이션, 직접 크루 운영까지 다양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스포츠패션 업계에서 한발 늦은 국내 브랜드들도 곧 러닝크루와 함께 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경운기자 cloud@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