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치러진 대선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6년 연임에 성공했다. 강력한 경쟁후보가 낙마하고 야권이 분열된 탓에 선거 결과는 일찌감치 예고돼왔지만 부정선거 논란에 더해 50%에도 못 미치는 저조한 투표율로 내년 1월부터 2기 집권을 시작하는 마두로 대통령은 벌써부터 정치적 위기에 직면한 상태다. 특히 미국은 베네수엘라에 추가 원유 제재를 예고하고 있어 마두로 정권과 베네수엘라의 앞날에 험로가 예상된다.
베네수엘라 선거관리위원회는 이날 밤 92.6%의 개표 결과 마두로 대통령이 67.7%를 득표해 야권의 경쟁자였던 엔리 팔콘 후보(21.2%)를 누르고 당선됐다고 밝혔다. 마두로 대통령이 자신의 강력한 대항마였던 민중의지당 지도자 레오폴도 로페스를 가택 연금시키며 출마를 차단한 가운데 야권 내 선거 보이콧에 대한 찬반 입장이 갈리면서 결국 마두로 정권의 재집권을 도왔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따라 지난 2013년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 사망 이후 치러진 대선에서 대통령에 당선된 마두로는 내년 1월부터 두 번째 6년 임기에 돌입하게 됐다. 버스 운전사 출신인 좌파 마두로 대통령은 선관위 발표 직후 “민중의 승리”라고 자축하며 “팔콘 후보가 원한다면 베네수엘라 미래를 위해 언제 어디서든 만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득표율만 놓고 보면 마두로 대통령의 압도적 승리였지만 이날 투표율은 1998년 이래 20년 만에 최저치로 추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야당의 보이콧으로 유권자들이 투표를 포기하면서 이번 선거 투표율은 46.1%에 그쳤다. 2013년 대선 때 기록한 79.68%와 비교하면 33%포인트 넘게 추락한 수치다. 차베스 대통령이 집권한 이래 치러진 지난 세 번의 선거 평균치인 79%에도 한참 못 미쳤다.
선관위 발표 직후 야권은 즉각 불복을 선언하며 마두로 정권에 대한 선거 조작 혐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앞서 선거 불참을 선언한 우파 야권 연합 국민연합회의(MUD)가 주축이 된 광역전선은 투표 마감 직후 “자체 집계 결과 투표율이 30%를 밑돌았다”며 투표율 조작 혐의를 제기하고 있다. 팔콘 후보 측도 낮은 투표율을 이유로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한편 개표 전부터 여당의 부정선거를 의심할 만한 신고가 수천 건 접수됐다는 점을 들며 재선거를 주장하고 나섰다. 특히 전국 투표소에 세워진 1만3,000개의 ‘레드포인트’가 검열소 역할을 했다는 논란이 거세다. 국민들이 투표 직전 식량 및 지원금을 배급받을 때 쓰는 신분증을 레드포인트에서 스캔하도록 해 ‘여당 후보를 찍지 않으면 배급 혜택이 끊긴다’고 인식하도록 유도했다는 것이다. 독일 일간 도이체벨레는 “야권은 여당이 식량 공급을 투표와 연결해 가난한 유권자들에게 공포감을 심어줬다고 비판했다”고 설명했다.
국제사회도 이번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이날 트위터에서 “베네수엘라 대선은 엉터리”라고 혹평했고 칠레의 우파 대통령 세바스티안 피녜라도 “베네수엘라 대선은 최소의 민주주의 기준마저 지키지 못했다”며 대선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특히 미국은 베네수엘라의 주요 외화벌이 수단인 원유 거래 제한 강도를 끌어올리겠다는 방침이어서 마두로 정권 집권 2기를 맞는 베네수엘라 경제는 한층 심각한 파탄에 내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마두로 취임 이후 베네수엘라 국내총생산(GDP)의 45%가 감소했으며 올해 물가 상승률은 1만3,800%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야당과 국제사회의 반발 속에 마두로 정권에 대한 국제 제재가 더 심해질 것”이라며 가뜩이나 추락하는 베네수엘라 경제에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창영기자 kcy@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