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현지시간) 중국을 공식 방문한 김정은(오른쪽) 북한 국무위원장이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중국군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베이징=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자신감을 얻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대외 외교 행보가 한층 더 빠르고 과감해지고 있다.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북한체제 안전 보장뿐 아니라 내심 기대했던 한미연합훈련 잠정 중단 등의 성과까지 거둔 김 위원장이 그 자신감을 바탕으로 외교가의 예상을 깬 파격적인 3차 방중에 나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19일 김 위원장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제3차 북중 정상회담을 열고 “국제 지역 정세가 어떻게 변하더라도 북중관계를 발전시키고 공고히 하려는 중국의 입장과 사회주의 북한에 대한 지지에 변함이 없을 것”이라며 북한 후원자 역할과 대북 협상 역할론을 재확인했다. 시 주석은 “북미 양측이 정상회담 성과를 잘 실천하고 유관 각국이 협력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함께 추진하기를 바란다”면서 “중국은 계속해서 건설적인 역할을 발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북미 양측이 정상회담에서 달성한 공동 인식을 한 걸음씩 착실히 이행한다면 한반도 비핵화는 새로운 중대 국면을 열어나갈 수 있다”면서 “북한은 중국 측이 한반도 비핵화 추진, 한반도 평화 및 안정 수호 방면에서 보여준 역할에 감사하고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이날 김 위원장의 3차 방중은 앞선 3월과 5월의 두 차례 방중과 달리 중국 관영매체를 통해 곧바로 공개됐다. 김 위원장은 물론 선대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 시절에도 찾아보기 힘든 파격이다. 북측의 동의 없이는 김 위원장의 방중 사실이 곧바로 발표되기 힘들다는 점을 감안할 때 국제사회에 정상적인 외교 국가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한 김 위원장의 의도적인 행보로 풀이된다.
지난 두 차례 중국 방문보다 수행단 규모가 훨씬 커진 것도 특징이다. 베이징 소식통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일류신(IL)-62M을 개조한 참매 1호와 전용기 안토노프-148 등 특별기를 타고 방중한 김 위원장 일행은 서우두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김 위원장 전용차량을 의미하는 휘장이 새겨진 VIP 차량 2대와 함께 댜오위타이로 곧바로 이동했다. 고급 승용차 10여대와 미니버스 10여대, 구급차량, 식자재를 실은 차량 등이 뒤를 따랐다. 이날 인민대회당 회동에 북한 측에서는 김 위원장과 부인 리설주, 최룡해 국무위원회 부위원장, 박봉주 내각 총리,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리수용 노동당 부위원장 겸 국제부장, 리용호 외무상, 노광철 인민무력상 등 실세 인물들이 모두 출동했다. 중국 측에는 시 주석 부부를 포함해 왕후닝 정치국 상무위원, 딩쉐샹 당 중앙판공청 주임, 양제츠 외교담당 정치국원, 왕이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참석했다.
이번 방중이 글로벌 외교가의 큰 관심을 받는 이유는 또 있다.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이 3개월 사이 세 번이나 이뤄지면서 한반도 비핵화 협의 과정에서 양국의 급속한 밀착이 공식 확인됐다는 점이다. 베이징의 한 외교 소식통은 “김정일 전 위원장이 2011년 사망하기 1년 전 후계구도 문제 때문에 네 차례 방중한 적이 있지만 지금처럼 북한 정권이 절박한 상황이 아닌데도 석 달 사이에 세 차례나 방중한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이번 김 위원장의 방중에는 양측의 이해가 맞닿는 공통분모가 크다는 평가도 나온다. 김 위원장은 이번 3차 방중과 회담을 통해 대북제재 완화에 대한 중국의 지지를 약속받고 시 주석도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재확인하며 한반도 문제에 대한 자국의 역할을 강화하는 기회를 확보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 중국은 이번 김정은 3차 방중에 앞서 대북제재 완화 움직임을 뚜렷하게 보여왔다. 최근 중국국제항공이 베이징~평양 정기 항공편 운영을 재개한 가운데 중국 3대 온라인 여행 사이트인 취날왕은 최근 북한 단체관광상품을 내놓았다.
반면 이번 김정은의 3차 방중이 최근 크게 악화하고 있는 미중관계에 또 다른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은 커졌다. 앞선 두 차례 방중 이후 북미 협상은 물론 미중관계에 잡음이 컸던 것을 보면 이번 북중 정상회동이 향후 정세 전개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일현 중국 정법대 교수는 “이번 3차 방중 후 또다시 북한이 북미 협상에서 태도 변화를 보일 경우 미중 간 외교갈등이 커지고 한중 간 갈등마저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홍병문특파원 hb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