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들이 신개념 유통업체인 베이징 허마셴성에서 신선식품을 고르고 있다. 이렇게 직접 고른 신선식품들은 매장에 설치된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소비자의 가정까지 최단 시간에 배달된다./베이징=이호재기자.
중국 베이징의 한국인 거주지로 알려진 왕징 지역에서 차로 약 30분 거리에 있는 스리바오. 목적지는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의 신(新)유통 오프라인 마켓인 ‘허마셴성’이다. 지하 1층의 매장 입구로 들어선 취재단의 시야에 학교 운동장처럼 뻥 뚫린 넓은 공간에 잘 포장된 색색의 채소가 진열된 모습이 들어왔다. “한국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어요? 마트 입구에 마치 서울 톨게이트를 빠져나가듯 밀려 있는 계산대와 카트로 뒤엉켰던 고객들의 줄이 없잖아요.” 서울경제신문 취재단으로 함께 베이징을 방문한 엄치성 전국경제인연합회 국제협력실장의 설명에 그제야 매장이 이렇게 쾌적한 이유를 깨달았다.
허마셴성에서는 한국의 대형마트 매장을 뒤덮는 쇼핑카트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한 쇼핑객이 채소 판매대의 상추 가격 표시판에 화웨이 스마트폰을 들이대자 곧바로 가격과 함께 수확일자·조리법이 뜬다. 전자식 가격판에는 시기·기간마다 바뀌는 가격이 바로 반영된다. 쇼핑객은 QR코드를 찍고 알리페이로 결제하더니 물건을 내려놓고 자리를 떠났다.
곧 하늘색 유니폼을 입은 직원이 분주한 발놀림으로 나타났다. 직원은 단말기를 확인한 뒤 주문된 제품을 바구니에 담아 매장 한편에 있는 컨베이어벨트에 걸었다. 주문품이 담긴 바구니는 천장에 연결된 컨베이어벨트를 통해 포장돼 고객의 집으로 배송된다. 3㎞ 이내에 거주하는 고객일 경우 30분 만에 집에서 물건을 받아볼 수 있다.
알리바바 오프라인 마켓 허마셴성
QR코드 찍고 페이 결제하면
직원이 포장해 30분내 집으로
커피숍선 “노캐시, QR코드 스캔”
이곳에서는 쇼핑카트가 부딪히거나 계산을 위한 긴 줄로 짜증을 낼 일도, 산 제품을 박스로 포장하는 수고도 필요 없다. 쇼핑객들은 하나같이 빈손이다. 고객들은 허마센셩의 앱을 통해서도 매장에 있는 모든 식재료와 음식을 받을 수 있다. 허마센셩은 대형마트이자 물류창고다. 온·오프라인 어디서든 알리바바를 통해 소비가 일어나는 것이다. 취재단의 일원인 조철 산업연구원 중국연구부장은 “정말 사람들이 돈을 쓰기 편하게 혁신했다”며 “우리 같았으면 유통혁명을 말하기 전에 마트 계산직원을 없앤 것부터 문제 삼았을 것 같다”고 꼬집었다.
건물 1층의 유니클로 매장 뒤로 돌아가자 헬멧을 쓴 직원 수십 명이 배달품을 오토바이에 싣고 서둘러 출발하고 있다. 계산직원이 없어진 대신 주문된 상품을 패키징하고 배송하는 일자리가 생긴 것이다. 혁신을 이룬 허마셴성의 ㎡당 매출액은 6만위안(약 1,000만원)으로 현지 백화점(1만위안)의 6배에 달한다. 알리바바는 전국 30여개인 허마셴성 매장을 내년까지 2,000개로 늘릴 계획이다.
중국의 유통혁명은 알리바바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창업기업들이 밀집한 선전 난산지구의 ‘러킨(LucKin) 커피’ 매장에서는 주문을 하자마자 “노 캐시, 싸오”라는 말이 돌아왔다. ‘싸오’는 ‘QR코드를 스캔하라’는 말이다. 한국에서도 유명한 배우 탕웨이의 입간판이 세워진 카운터 옆에는 음료가 담긴 종이봉투가 빼곡하게 줄을 서 있다. 주변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직장인들이 애플리케이션으로 미리 주문과 수령시간·결제를 해놓은 것이다. 점심시간이면 주문과 계산을 하려는 직장인들로 발 디딜 틈 없는 한국 커피 매장의 풍경은 찾아볼 수 없다. 현지 재래시장에서는 복숭아 하나를 계산할 때도 QR코드로 한다. 알리페이의 수수료율은 최대 2%가량인 한국의 카드사와 달리 0.5% 수준. 중국의 정보통신기술(ICT) 혁명은 한국에서 논란이 일고 있는 카드수수료율 인하 정책과 현금 결제로 인한 소득탈루로 생기는 지하경제 문제를 양지로 끌어냈다.
중국은 1980~1990년대생, 4억5,000만명에 달하는 일명 ‘소황제’의 성장과 내수 소비를 촉진하는 정부의 전략이 합쳐지면서 오는 2030년 소비시장 규모가 15조달러(약 1경7,000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총생산(GDP)의 절반 이상을 내수가 도맡는다. 거대 내수시장을 겨냥한 중국의 신유통 혁신이 향하는 것은 금융이다. 중국 ICT 기업들은 고객 수억 명의 생활을 일일이 빅데이터로 쌓고 다시 판매에 반영하고 있다. 이 데이터는 유통과 자산관리·신용대출 등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될 것이다. 한국이 중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에 서명한 2015년 이후 유통과 금융을 규제로 꽁꽁 묶어놓은 지난 3년 동안 중국 기업들은 ICT 혁신으로 판을 바꿔 미래 소비에 걸맞은 혁신적인 생태계를 구축했다.
ICT로 금융·유통 생태계 대혁신
韓 서비스시장 열면 잠식 불보듯
이대로라면 앞으로 타결될 한중 FTA의 금융·서비스협정이 한국에 독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FTA는 중국 기업에 한국 기업과 동등한 권리를 부여하는 내국민대우(NT)와 최혜국대우(MFN)를 보장하고 시장접근(MA)을 제한하지 못하게 규정하고 있다. 또 요건이 충족되면 상대국에서 허용·거래되는 신금융 서비스도 허용해야 한다. 엄 실장은 “지금 수준으로 볼 때 서비스시장과 금융시장이 개방되기를 누가 더 바라겠느냐”며 “중국과 한국, 어느 기업이 더 경쟁력 있는지 보면 알 것”이라고 강조했다./베이징·선전=구경우·서민준기자 bluesquar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