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의료기기 시장의 투명성 강화를 위해 추진하고 있는 ‘가격정보 보고’ 의무화 제도에 대해 업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정부는 기기 부작용과 리베이트 근절을 위해 내년부터 시행한다는 입장이지만 업계는 국내 의료기기를 육성하기는커녕 현실을 무시한 채 규제만 강화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의료기산업협회 등 관련 단체들은 최근 의료기기의 가격정보 보고와 관련해 반대 의견을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전달했다. 업계는 의견서에서 의료기관에 최종 공급한 업자만 공급 가격을 보고하는 내용의 수정안을 제시했다. 의료기기 유통 과정의 투명성을 높이는 한편 공급 가격이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만큼 모든 유통 단계에서 가격 보고는 부적절하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5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입법예고한 의료기기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의료기기 제조·수입·판매·임대업자는 의료기관, 판매·임대업자 등에 의료기기를 공급한 경우 해당 기기의 공급 가격 등 내역을 매달 식약처장에게 보고토록 규정하고 있다. 가격 보고 대상은 의료기기 가운데 인공심장판막, 인공와우 등 치료재료다. 판매·임대업자 간에 거래하는 경우 가격을 보고하지 않아도 되나 복지부 장관이 가격 보고를 요구할 수 있다.
의료기기의 가격 보고는 지난 2016년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의료기기 유통정보 관리시스템(UDI)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포함됐다. UDI는 부작용을 일으키는 의료기기의 추적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 의료기기에 고유식별코드를 부착하고 유통 정보를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의료기기 시장에서 리베이트를 근절하고 투명성을 높이고자 복지부에서 UDI에 가격 보고하는 방안을 추가했다. 식약처 측은 “외국계 의료기기 업체에서 의료기기의 안전관리를 강화하기 위한 UDI의 취지와 공급가격 보고가 관련이 없다는 내용의 의견을 제출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정부에서는 의료기기 유통과정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가격 보고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의료기기 시장에서 리베이트는 의약품 시장과 마찬가지로 고질적인 문제로 꼽힌다. 의료기관이 의약품 도매상과 유착하거나 중간에서 납품을 대행하는 업체를 특정해 거래하면서 상당한 수수료를 받는 식이다. 한 의료원에서 제약회사, 의료기기 회사 등 20여개 회사로부터 3억원을 리베이트를 받아 적발된 사례도 있다. 복지부 측은 “초안은 전체 유통 단계별로 가격 보고하는 내용이었으나 업계의 의견을 수렴해 축소한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 역시 리베이트 근절을 위해서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영세한 의료기기업체들에게 매 단계별로 매달 가격고지 책임을 지우는 것은 지나친 규제라고 반발하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 의료기기의 유통 구조를 투명하게 하는 데 업계도 동의하지만 국내 업체들의 현실도 반영해야 한다”며 “국내 의료기기 업체들이 대부분 영세한 만큼 제도가 본격 시행될 경우 개별 업체들이 큰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가격 보고를 포함한 UDI는 논의를 거쳐 최종안을 확정한 뒤 내년 본격 시행될 예정이다. 가격 보고를 제외한 전반적인 시스템 점검을 위해 이달 중 시범사업도 실시한다. 제도가 본격 시행된 후 의료기기 업체가 공급 내역을 보고하지 않을 경우 위반 횟수에 따라 영업정지 15일부터 6개월까지 처벌을 받게 된다.
/김지영기자 jiki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