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만남 끝난 이산가족]"오래 사세요, 다시 만나게"…눈물로 얼룩진 기약 없는 이별

"김포·개성 코앞인데…통일돼야"
서로 집 주소·전화번호 주고받고
"아이고 아이고" 한맺힌 숨소리만
인사 못한채 헤어질까 조바심
"가족 아닌것 같아" 수긍 않기도

2박3일간의 상봉행사를 마친 남측 이산가족이 22일 고성 금강산호텔에서 속초로 향하는 버스에 탑승한 후 눈물을 훔치며 작별인사를 하고 있다.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김포에서 개성까지 차로 40분이면 가는데….”

이산가족 상봉행사의 마지막 날인 22일 작별상봉장은 탄식과 눈물로 얼룩졌다. 북측의 조카들과 만난 송영부(92) 할머니는 북측 가족들이 “간밤에 안녕하셨느냐”고 인사하자 흐느끼기 시작했다. 김병오(88)씨와 북측의 여동생 순옥(81)씨는 10분 넘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아이고, 아이고’ 한 맺힌 숨소리만 내뱉었다. 작별상봉을 시작하자마자 북측의 여동생과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던 김춘식(80)씨는 “오래 살아야 다시 만날 수 있다”며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는 이들이지만 전화번호와 주소 교환도 이뤄졌다. 신재천(92)씨는 북측의 여동생 금순(70)씨에게 “서로 왕래하고 그러면 우리 집에 데리고 가서 먹이고 살도 찌우고 하고 싶다”며 “죽기 전에 우리 집에 와서 밥도 먹고 그러라”고 기약 없는 초대장을 보냈다. 재천씨는 김포에, 동생 금순씨는 개성에 산다. 동생인 금순씨는 “개성에서 김포는 금방”이라며 “빨리 통일이 돼야 한다”고 오빠를 안심시켰다. 김혜자(76)씨는 북측의 남동생 은하(75)씨에게 ‘서울시 구로구’로 시작하는 자신의 주소, 집전화와 휴대폰 번호를 적은 수첩을 찢어 건넸다.


70여년 만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건배’를 한 부자(父子)도 있었다. 애주가인 이기순(91)씨는 상봉에 앞서 북측의 아들을 만나면 “너도 술을 좋아하느냐”고 묻겠다고 했다. 이씨는 이날 오전 작별상봉이 시작되자 소주 ‘좋은데이’ 한 병을 들고 상봉장으로 들어와 물컵에 소주를 따라 아들과 나눠마셨다. 말문이 막히는지 아무 말 없이 소주만 들이키던 기순씨는 괜히 테이블에 놓인 사과를 아들 앞에 밀어주기도 했다. 남측 소주를 한 컵씩 나눠마신 이씨 부자는 북측의 들쭉술도 한잔씩 나눠마셨다. 남측의 삼촌 이관주(93)·이병주(90)씨를 만난 북측의 조카 리광필씨는 평양의 자랑인 대동강맥주를 콸콸 따라 ‘건배’를 외치기도 했다.

전날 건강이 좋지 않아 상봉행사에 참여하지 못한 김달인(92)씨의 북측 여동생과 조카는 행여나 작별인사를 하지 못한 채 헤어질까 봐 조바심을 내기도 했다. 이들은 작별상봉 행사장에서 현장 관계자들에게 김씨가 나오는지 여러 차례 물었다. 김씨가 도착하자 여동생은 자리에서 일어나 큰 목소리로 “이쪽으로 오세요”라고 외치며 오빠를 자기 옆에 앉혔다. 여동생은 간직해뒀던 70년 전 오빠의 사진을 가지고 나와 상봉 내내 김씨에게 보여줬다. 김씨는 “처음에는 그냥 좋았는데 마지막 날이 되니 기분이 좀 그렇다”며 착잡한 마음을 드러냈다.

가족인지 아닌지 반신반의하는 경우도 있었다. 북측의 조카를 만나기 위해 상봉행사에 참여한 이재일(85)·재환 형제는 지난 20일 첫 단체상봉에서 헤어진 형의 자녀라며 나온 북측의 리경숙(53)·성호(50) 남매가 가져온 형의 사진을 보고 동시에 “아닌 것 같다”고 고개를 저었다. 이재환씨는 급기야 “조카가 아닌 것 같다, 어떻게 형의 나이와 사망 경위도 모르느냐”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기도 했다. 살면서 남쪽에 있는 형제 얘기를 한마디도 안 했다는 게 북측 조카들의 설명이었다. 북측의 이산가족 확인 실무 담당자가 호적 관련 서류를 들고 와 조카가 맞다고 설명했지만 이들은 수긍하지 않았다. 이재환씨는 이튿날부터 이어진 행사에서는 자리를 지키고 기념촬영도 했지만 작별상봉에서도 반신반의하는 모습이었다.

반면 북측 언니와 동생을 만난 배순희(82)씨는 “동생은 나랑 나이 차이가 좀 나는데 나보다 더 주름이 많아서 옛날 얼굴을 전혀 몰라보겠더라”면서도 “그제, 어제 몇 시간씩 만나니 그 얼굴에서 어릴 때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사흘이라도 만나서 감사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북측 조카와 상봉한 이병주(90)씨는 “이번에 만나 이산가족의 한은 풀었고 마음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됐다”면서 “이번에 큰아들도 데려왔는데 이제 아들들한테 인계하고 애들한테 (우리 뿌리를) 맡기고 가게 됐다”고 했다.
/금강산=공동취재단 박효정기자 j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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