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정운호 게이트’ 수사 당시 검찰의 수사기밀을 빼내고 영장심사에 개입한 의혹을 받는 현직 판사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또 기각했다. 법원이 중앙지법 내부에서 기밀을 공유한 것이기에 죄가 안된다고 기각한 데 대해 검찰은 “재판독립의 원칙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위헌적 주장”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13일 법원과 검찰에 따르면 이언학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2016년 같은 법원 형사수석부장을 지낸 신광렬(53) 서울고법 부장판사의 사무실과 당시 영장전담 판사들이 사용한 PC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전날 기각했다. 이 부장판사는 일부 이메일 압수수색만 허용했다.
이 부장판사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법관 비위에 대한 대처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당시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에게 법관 비위 정보를 수집하게 한 행위는 공무상비밀누설죄가 성립한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판사들 비위에 대한 수사정보를 구두 또는 사본으로 보고했다는 점을 영장판사들이 상세히 진술해 이 부분에 관한 사실관계가 충분히 확인됐으므로 압수수색 필요성이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법원은 지난달 말에도 신 부장판사 등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비슷한 사유로 기각한 바 있다. 다만 당시 서울서부지법에서 집행관 비리 수사정보를 빼낸 혐의를 받는 나모(41) 부장판사의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됐다. 헌법재판소 내부기밀을 빼낸 최모(46) 부장판사 역시 압수수색을 받았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정운호 게이트’ 수사가 진행 중이던 2016년 법원행정처가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로부터 뇌물이나 향응을 제공받은 것으로 의심되는 판사 7명의 가족 인적사항을 정리한 ‘관련 부장 가족관계’라는 제목의 문건을 확보해 수사 중이다. 이 문건은 판사들의 가족에 대한 통신·계좌추적 영장이 청구될 경우 이를 걸러내도록 하려는 의도에서 작성된 것으로 검찰은 의심하고 있다. 법원행정처가 정리한 이 문건이 신 부장판사를 거쳐 당시 영장전담 부장판사들에게 전달됐다는 진술도 나왔다. 당시 법원행정처가 판사비리 수사 확대를 막기 위해 김수남 당시 검찰총장을 협박하려 한 정황도 드러난 상태다.
검찰은 기밀유출이 기관 내부의 정보를 주고받은 것뿐이라는 이 부장판사의 주장은 재판의 독립 원칙’을 법관 스스로 부정하는 위헌적 발상이라고 반박했다. 검찰 관계자는 “(신 부장판사가) 수사상황을 빼내 법원행정처에 전달한 목적은 판사 추가수사 중단을 요구하는 협박, 영장기각 등 다양한 불법수단을 동원해 향후 진행될 판사들에 대한 뇌물 수사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며 “영장판사들이 구체적 영장재판에 (법원행정처가) 개입한 점이 드러난 다수의 법원 내부 문건이 확보된 상태여서 (수사상황을 빼낸 행위는) ‘법관 비위 대처방안 마련을 위한 법관 비위 정보 수집’과는 무관하다”고 전했다.
또 검찰은 ‘정운호 게이트’ 당시의 수사정보가 누설된 것은 서울서부지법과 헌재에서의 기밀유출과 같은 구조의 범죄혐의인데도 부당하게 영장이 기각됐다고 강조했다. 검찰 관계자는 “혐의 입증을 위한 증거를 수집하는 압수수색 단계에서 ‘서부지법 사건은 죄가 되고, 중앙지법 사건은 죄가 안 된다’는 취지의 판단은 지극히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조권형기자 buzz@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