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의혹을 받고 있는 브렛 캐버노 미국 연방대법관 지명자가 27일(현지시간) 미 상원 법사위에 출석해 발언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27일(현지시간) 미국 상원 법사위원회의 청문회에서 브렛 캐버노 연방대법관 지명자의 고교 시절 성폭행 미수 의혹을 둘러싼 공방이 벌어졌다. ‘가해자’로 지목된 캐버노 지명자와 피해여성이 각각 시간차를 두고 청문회 증인으로 출석했다. 캐버노 지명자는 현재 5건의 성추문에 휩싸여 있다. 인준을 앞두고 이번 파문이 중대 변수가 된 셈이다.
크리스틴 포드는 이날 청문회 증언석에서 30여 년 전인 80년대 초반 겪었다는 ‘끔찍한 경험’과 그로 인해 평생 겪어온 ‘심적 후유증’에 대해 밝혔다. 포드는 지난 16일 워싱턴포스트(WP)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신원을 공개하며 이 사건을 공론화했다. 고교 시절인 1980년대 초반 여름, 메릴랜드 주 몽고메리 카운티에서 열린 파티에서 비틀거릴 정도로 취한 캐버노가 그의 친구와 함께 자신을 침실에 가두고 성폭행하려 했다는 것이다.
포드는 잠긴 목소리로 준비해온 원고를 읽어나갔다. 대체로 차분하게 답변을 이어갔지만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포드는 캐버노 지명자를 다른 사람과 헷갈렸을 가능성에 대해 “(가해자가 캐버노라는 걸) 100% 확신한다”며 당시 상황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기억은 캐버노가 친구와 낄낄대던 ‘웃음소리’라고 밝혔다. 그는 “캐버노의 성폭력이 인생을 철저하게 바꿔놨다”며 불안과 포비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 강간을 당한 것은 아니다,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지내자고 수없이 자기암시를 하며 살아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포드는 캐버노의 대법관 지명이 거의 확실해진 순간부터 자신이 겪은 일을 공개할지를 놓고 고민해왔다. 자신의 ‘폭로’를 놓고 정치적 공세라는 공화당 등의 주장에 대해 포드는 이번 사건을 공론화하기로 한 결정이 정치적 동기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며 “시민적 의무라고 믿기에 나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회 후 재개된 청문회에는 캐버노 지명자가 증인으로 등장했다. 그는 모두발언에서 “나는 그녀(포드)에게도 다른 어떤 누구에게도 그와 같은 일을 한 적이 없다. 나는 결백하다”면서 의혹을 부인했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무고’가 자신의 가족과 명성을 완전히, 영구히 짓밟았다고 말했다.
캐버노 지명자는 “가끔 맥주를 너무 많이 마시기도 하지만, 필름이 끊길 정도로 마신 적은 없다”고 거듭 밝혔다. 그는 청문회 내내 격앙된 어조로 발언하고 중간중간 울먹이기도 했다. “나에 대한 인준 청문회가 ‘국가적 수치’가 됐다”고 말한 캐버노 지명자는 조언과 추인의 장이어야 할 청문회가 죽이기의 장으로 전락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인준 투표로 날 쓰러트릴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코 멈추게 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사퇴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다시 확인했다.
이번 파문이 여성 유권자들을 자극해 11월 중간선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한 공화당 인사들도 대체로 신중한 태도를 이어갔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과 가까운 강경파인 린지 그레이엄(사우스캐롤라이나) 상원의원은 청문회에서 민주당의 공세를 “그동안 정치에서 봐온 것 가운데 가장 비열한 짓”이라며 “민주당은 캐버노의 인생을 파괴했으며, 차기 대선 승리를 염두에 두고 대법관 자리를 공석으로 계속 비워두기 위해 비도덕적인 책략을 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날 청문회와 관련, 보수 매체인 폭스뉴스는 “공화당에는 참사”라고 평가했다. 폭스뉴스 진행자는 포드에 대해 “그녀가 더 주저주저하면서 연약해 보이는 모습을 보일수록 시청자들에게는 더 신뢰를 주며 큰 임팩트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상원 법사위는 청문회 이후 전체회의를 열고 인준 표결을 실시할 예정이다. 이날 표결을 통과하더라도 공화당에서 이탈표가 발생할 경우를 고려했을 때 본회의 인준을 장담하기는 어렵다.
트럼프 대통령은 청문회에 집중하기 위해 ‘대통령 직무박탈’ 모의 의혹이 제기된 후 사의를 표명했던 로드 로즌스타인 법무부 부장관과의 면담 일정을 내주로 미뤘다. 유엔총회에 참석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워싱턴DC로 돌아오는 전용기 에어포스원 안에서 평소 애청하는 폭스뉴스 채널을 통해 청문회를 시청했다. /이다원인턴기자 dwlee618@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