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기업 고용세습 방치 정부 책임이 크다

대기업 노조의 고용세습 병폐가 좀체 사라지지 않고 있다. 김동철 바른미래당 의원이 내놓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8월 말 현재 조합원 자녀에게 취업 혜택을 주는 곳은 현대자동차 등 15곳에 이른다. 이들 기업은 정년퇴직한 조합원의 자녀를 우선 채용하거나 다른 지원자에 비해 가산점을 주는 등 다양한 특혜를 제공하고 있다.


노동계의 고용세습은 그동안 숱한 문제점이 제기되면서 사회적 공분을 불러일으켰던 사안이다. 청년 취업난이 사상 최악으로 치닫는 가운데 ‘현대판 음서제’라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다. 고용세습은 근로자 채용과정에서의 차별을 금지하는 고용정책기본법과 직업안정법을 위반한 명백한 불법행위다. 더욱이 정부가 현행법을 어긴 단체협약에 대한 시정조치를 다짐했지만 좀처럼 근절되지 않고 있으니 개탄스럽다. 이런 압력에도 고용세습을 고집하는 노조가 대부분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소속이라니 거대조직의 위세를 믿고 버틴다는 비판이 나오게 마련이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데는 무엇보다 고용노동부의 책임이 크다. 김영주 전 고용부 장관은 “청년들이 가고 싶어하는 일자리를 단 하나라도 대물림하는 것은 사라져야 할 기득권이자 규제”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엄포에 그쳤을 뿐 실제로는 노사 자율에 최대한 맡겨야 한다는 방관자적 자세로 일관해 화를 키우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이나 근로시간 단축 등 노동계에 유리한 분야에는 사사건건 개입하면서 청년들의 최대 관심사인 고용세습 문제를 애써 외면하고 있으니 책임 회피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과거 정권의 채용비리는 검찰까지 나서 샅샅이 뒤지는 데 반해 노동계의 오랜 적폐는 내버려둔다면 누가 납득하겠는가.

청년 실업난이 심각한 가운데 사회적 형평 차원에서 고용세습은 절대 용납돼서는 안 된다. 당국은 노조에 시정조치를 내리고 관련법을 손질하는 등 근본적인 대책을 서둘러 내놓아야 한다. 취업전선에 뛰어든 청년들이 현대판 음서제에 가로막혀 눈물을 흘리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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