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불신, 벌금형도 문제다] 같은 징역 3년형이라도 벌금은 300만~2억원 천차만별

<상>참을 수 없는 벌금형의 가벼움 -들쑥날쑥 벌금액수


형벌은 죄질에 비례해 부과돼야 한다. 살인죄가 절도죄에 비해 중하므로 당연히 무거운 벌을 받아야 한다. 이를 ‘형벌의 비례성’이라고 한다.

그러나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형법의 경우 벌금형에 대해 이러한 비례관계가 완벽하게 구현돼 있지 않다고 말한다.

비밀침해죄와 명예훼손죄·공연음란죄 중 가장 무거운 죄는 비밀침해죄, 다음이 명예훼손죄, 공연음란죄의 순서다. 비밀침해죄는 봉함하거나 비밀장치한 사람의 편지·문서·전자기록 등을 무단으로 열어보는 죄를 말한다. 셋 중 가장 법익침해가 크다고 본다. 따라서 형법상 징역 3년 이하로 처벌된다. 명예훼손죄는 법익침해 정도가 그다음이므로 징역 2년 이하, 공연음란죄는 징역 1년 이하에 처한다. 이처럼 징역형은 법익침해 정도에 따라 비례한다.

그러나 벌금형은 세 가지 범죄유형 모두 500만원 이하다. 승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형벌 중 벌금형은 죄질에 비례해 규정돼 있지 못한 까닭에 형벌 부과 자체가 형사사법정의에 부합되지 않을 위험이 있다”고 밝혔다.

징역형은 죄질따라 비례하지만 벌금형은 마땅한 기준 없어

10년전부터 ‘징역 1년=1,000만원’ 권고했지만 문제 여전


위반행위 비슷해도 벌금 제각각..헌법상 평등권 침해 소지



◇징역은 같은 3년형인데 벌금은 300만원 대 2억원=형사 관련법을 보면 징역형과 벌금형이 얼마나 들쑥날쑥한지가 잘 드러난다. 벌금형 상한을 징역형 상한 연수로 나눠보면 알 수 있다.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7조(우범자)를 보면 징역 3년 이하, 벌금 300만원 이하다. 1년당 벌금액 100만원꼴이다. 그러나 성폭력범죄 처벌 특례법 10조1항(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을 보면 징역 3년 이하에 벌금 1,500만원 이하다. 징역은 같은 3년인데 징역 1년당 500만원꼴로 5배 뛰었다. 환경범죄 특별조치법 5조(과실범)의 경우는 징역 7년 이하에 벌금은 1억원 이하다. 징역 1년당 벌금 1,400만원꼴이다.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법 66조(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벌칙)에는 징역 3년 이하에 벌금 2억원 이하로 징역 1년당 벌금액수는 6,700만원이다.

이에 대해 국회 법정형정비위원회 활동결과보고서에서는 “징역형과 벌금형을 범죄행위에 대한 동등한 처벌수단으로 봐야 한다면 징역형은 동일한데 벌금액이 심한 편차를 가지도록 방치하는 것은 국민들에게 법 적용의 공정성 평가를 혼란하게 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법 위반유형·징역형은 동일한데 벌금형은 천차만별=부정한 방법으로 독립운동가가 돼 보상을 받다 적발되면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그러나 같은 부정한 방법으로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자로 보상받은 것이 적발될 경우 징역 5년에 벌금은 2,000만원 이하다. 부정한 방법으로 국가보상을 받은 것은 같은데 어느 법률을 적용하느냐에 따라 하나는 벌금이 5,000만원 이하, 다른 하나는 2,000만원 이하다. 부정한 방법에 의한 허가취득은 더 심하다. 부정한 방법으로 총포·도검·화약류 면허를 받은 사람은 징역 3년 이하 또는 벌금 700만원 이하에 처한다. 그러나 부정한 방법으로 외국환 거래 허가를 받은 것이 적발되면 징역은 같은 3년 이하인데 벌금은 3억원 이하다. 같은 3년 이하 징역인데 벌금은 42배 차이다.

이에 대해 국회 법정형정비위 활동결과보고서에서는 “유사한 위반행위임에도 징역형과 달리 벌금형의 경우에는 어느 법률로 처벌되는지에 따라 실질적인 처벌의 정도가 달라지게 되므로 헌법상 평등권 침해나 비례의 원칙 위반이 문제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윤해성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역시 ‘형사법 개정연구-재산형 제도의 정비방안’ 책에서 징역형과 벌금형의 이 같은 불규칙한 대응상황을 지적한 뒤 “이는 아무 기준 없이 자의로 정했다는 추측을 가능하게 해준다”며 “이러한 것은 형법 이론적인 부분을 간과한 입법이며 형법의 불법성과 책임을 무시한 법정형이 아닐 수 없다”고 비판했다.

◇2013년 일부 개선됐지만 문제점 여전=이러한 문제들이 어제오늘 제기된 것은 아니다. 국민권익위원회에서도 지난 2009년 광범위한 조사를 통해 이 같은 문제들을 지적한 뒤 ‘징역 1년=1,000만원’ 수준으로 맞출 것을 권고했다. 2013년 당시 강창희 국회의장도 국회법정형정비 자문위원회를 만들어 징역형과 벌금형의 불균형 개선 등 법정형 개선작업을 진행했다. 국회 법정형정비 자문위원회도 조사를 거쳐 일반기준은 ‘징역 1년=1,000만원’ 수준으로, 특별기준은 보다 강화된 기준을 적용하는 개선안을 만들어 국회 각 상임위에 제시했다. 국회사무처의 박병섭 법제총괄과장은 이에 대해 “2013년 법정형 개선위원회 활동 이후 국회 각 상임위원회에 297건의 법정형 개선안을 발의했었다”며 “약 2년여 전에 점검한 결과 이 중 189건은 의결됐고 108건은 처리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형법 및 형법 관련법의 상당 부분은 아직도 1995년 개정법률 그대로의 벌칙을 유지하고 있다. /특별취재반=탐사기획팀 (안의식팀장 정두환선임기자 김상용기자 이지윤기자. 사회부 법조팀(김성수선임기자 안현덕기자 윤경환기자) miracl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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