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통해 세상읽기] 入耳出口 入耳箸心 <입이출구 입이착심>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강원 강릉의 한 펜션에서 단체로 숙박하던 고등학생들이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질식사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사건 사고가 많다 보니 웬만한 소식에는 그런가 보다 하던 사람들도 깜짝 놀랄 일이다. 다들 미래의 꿈을 가진 청년들이라 사고사는 부모를 비롯해 소식을 접한 많은 사람의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이런 비극적인 소식이 전해질 때면 다중으로 이용하는 시설물의 안전이 늘 문제로 등장한다. 정부는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필요한 규제를 만들고 상시적으로 규정대로 점검하고 사업자는 규제의 필요성에 공감해 설계·건축·운영 과정에서 만전을 기해야 한다.

다중이 이용하는 시설에 허점이 하나만 있어도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사건 사고가 일어나 현장의 실태를 파악해보면 허점이 없는 곳이 없다. 노후 시설로 안전진단을 제대로 받지 않거나 안전진단을 받아도 제대로 진행되지 않거나 비용 절감을 이유로 시공과 관리를 규정대로 하지 않은 경우가 발견된다. 이렇게 보면 시민은 늘 위험을 안고 불안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순자가 학문을 군자의 학문과 소인의 학문으로 구분한 내용을 살펴볼 만하다. 군자의 학문은 귀로 들어오면 마음에 새겨져 배움의 결과가 몸 전체로 퍼져 동작으로 드러나게 된다(입호이착호심·入乎耳著乎心, 포호사체형호동정·布乎四體形乎動靜). 반면 소인의 학문은 귀로 들어오면 바로 입으로 내뱉는다. 입과 귀 사이가 겨우 사촌에 불과하니 어찌 칠 척의 몸을 아름답게 할 수 있겠는가(입호이출호구·入乎耳出乎口, 구이지간재사촌·口耳之間才四寸, 갈족이미칠척지구재·曷足以美七尺之軀哉). ‘입이출구(入耳出口) 입이착심(入耳箸心)’이 여기서 나왔다.


군자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면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먼저 마음에 굳게 간직한다. 마음에 간직하니 언제 어디든 필요한 상황에서 제대로 활용할 수 있다. 이렇게 되다 보니 학문이 사람의 온몸으로 드러나고 무슨 일을 하더라도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없다. 반면 소인은 귀로 들으면 바로 입으로 내뱉어버리고 자신이 무엇을 들었는지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 이렇게 듣고 바로 떠드는 귀와 입의 거리가 너무나도 가깝다 보니 그것보다 수십 배가 더 큰 몸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

불행한 사건 사고를 완전히 피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한 번 일어난 사건 사고를 통해 배울 점이 많다. 당장 비슷한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재발 방지의 교훈을 얻어야 한다. 정부는 필요한 규제를 입안하고 국회는 법률을 제정하며 사업자는 규정과 절차를 준수해야 한다. 이것이 순자가 말하는 군자의 학문에 해당한다. 한 번 알게 된 사실을 마음에 굳게 간직하고 미래에 대비해 불안 요소를 걷어내니 시민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반면 사건 사고가 일어나면 정치인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현장을 찾아가 관심을 보이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조용하게 넘어가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순자가 말하는 소인의 학문에 해당한다. 재발 방지를 위해 아무런 대비를 하지 않으니 시민들은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걱정하고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다.

최근 서울 강남구 삼성동 대종빌딩이 붕괴 위험으로 주민을 대피시키는 일이 있었다. 또 윤창호법이 시행돼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이 강화됐다. 이러한 일은 그간 무슨 일이 일어나고 나서 우왕좌왕하던 관행과 달리 선제적으로 조치를 하고 불행한 일이 일어나도 배우지 않고 그냥 넘어가던 관행을 끊었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대종빌딩에 대한 조치가 조금이라도 늦었더라면’ 그리고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이 전처럼 솜방망이에 그쳤더라면’이라고 상상해보면 아찔하다. 공동체가 대비하면 피할 수 있는 일을 방치해 목숨을 잃는 경우가 발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 보조금에 비해 유치원생의 급식과 복지가 부실하다는 소식이 알려지고 시간이 꽤 흘렀다. 유치원생의 문제는 비리와 탈법만이 아니라 저출산 등 시민의 생명과 안전도 걸린 중대한 사안이다. 이에 대해 법률이 마련되지 않고 지지부진하다면 우리는 순자가 말한 군자의 학문을 하지 못하고 소인의 학문을 하고 있을 뿐이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