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6월 시작된 우리나라 고위 공직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는 장관급 등 고위 공직 후보자들에게 가혹하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기만큼 어렵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인사청문회에서는 본인·배우자·자녀 등 직계가족의 껄끄러운 정보들까지 공개되기 때문이다. 도입 20년이 다 돼가는 동안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많은 인사들이 낙마했다. 청문회 탓에 고위 공직 맡기를 꺼리는 인사들도 꽤 많다.
우리보다 한참 앞서 1787년 인사청문회를 처음 실시한 미국의 검증 기준은 혹독하기로 유명하다. 청문 기간만 9주, 그러니까 약 두 달 반이 걸린다. 검증을 통과하기도 까다롭다. 국회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미국은 백악관 대통령인사실에서 후보자를 추천하고 대통령 법률고문실과 연방수사국(FBI), 국세청, 정부윤리처와 해당 부처 윤리담당관실 등이 탈세와 범죄 경력 등 230여개 항목에 대해 3개월 이상 사전검증 작업을 벌인다.
이렇게 엄격한 검증을 거쳤는데도 청문회 과정에서 낙오자가 나온다. 1989년 교육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글렌 라우리 하버드대 교수는 청문회 과정에서 20여년 전 대학 시절에 등록금 대출을 갚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나 후보직에서 물러났다. 1991년 클래런스 토머스 대법원 판사 지명자의 경우 참고인이 무려 90여명이나 등장했다. 중학교 담임선생부터 대학 은사까지 참고인의 면면이 다양했는데 놀랍게도 이들 모두가 출석했다.
우리나라 역시 청와대가 철저하게 사전검증을 했다고 장담하는데도 청문회에서 낙마하는 인사가 적지 않다. 현 정부 이전까지 중도 하차한 총리·장관 후보자는 노무현 정부 2명, 이명박 정부 10명이었고 박근혜 정부도 두 자릿수에 육박한다. 그만큼 총리·장관 되기가 생각보다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얘기다. 국무위원을 인사청문회에 세우는 것은 입법부의 행정부 견제, 감시 기능의 일부분이지만 무엇보다 국민의 알 권리 차원이다. 국민 생활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고위 공직자의 면면을 살피고 직무 수행 능력이 있는지를 국민 대표기관인 국회에서 검증받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 비서진은 청문회 대상이 아니다. 인사청문회법 제2조, 국회법 제46조에 따르면 국회의 임명 동의가 필요한 고위 공직자, 인사청문회는 진행하나 국회의 임명 동의를 거치지 않는 고위 공직자에 청와대 비서실장·정책실장 등 비서진은 빠져 있다. 2003년 2월 국가정보원장 등 4대 권력기관장, 2005년 7월 장관 등 모든 국무위원 내정자도 인사청문회를 거치도록 대상이 확대되는 과정에서도 청와대 참모진은 제외됐다. 장관 못지않거나 오히려 더 센 영향력을 휘두르고는 하는데도 그렇다.
역대 정부에서 상당수의 비서실장이나 정책실장이 ‘왕실장’으로 불리며 장관들을 쥐락펴락해왔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입으로는 ‘나는 비서일 뿐’이라고 하지만 중요한 정책 결정에 막강한 입김을 행사해왔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대통령을 보좌하는 비서라는 이유로 국회 검증대에 서지 않고 있다. 국무위원들이 국회 청문회에서 국민의 검증을 받는 사이 같은 장관급인 청와대 참모진은 ‘셀프 검증’을 거쳐 임명과 동시에 ‘무혈입성’한다. 국민들이 참모진에 대해 알 수 있는 정보는 청와대가 내놓은 칭찬 일색의 프로필과 언론 보도 정도다. 그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고 자리에 걸맞은 능력이 있는지를 확인할 길이 많지 않다.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와 불협화음을 내며 현 정부의 무리한 경제정책을 밀어붙이는 데 앞장선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인사청문회를 거쳤다면 어땠을까. 고위 공직자에게는 정책 능력은 물론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도덕성도 요구된다. 장 전 실장의 경우 도덕성은 별개로 하더라도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 실험자, 이상론자임이 청문회장에서 드러나 중도 탈락했을지도 모른다. 비서진이 온갖 정책에 관여하는 것이 현실인 이상 국민의 사전검증을 받을 필요가 있다. 최소한 장관급 ‘3실장(비서·정책·안보)’에 대한 인사청문을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shi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