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팀 24/7] '웹하드 카르텔' 뿌리뽑겠다지만...예산·법적지원 없인 '공염불'

■'웹하드 카르텔'과의 전쟁 6개월
100일간 특별단속 3,600명 검거
조직적 증거인멸·유착관계 파헤쳐
모니터링 확대·처벌강화 외치지만
디지털 성범죄 예산은 한푼도 없어
전문인력 늘리고 AI 필터링 등 시급

시민들이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이름 없는 추모제’에 참석해 불법촬영·유포 피해 여성들을 추모하고 있다. /이호재기자

“내 친구는 2017년 8월1X일 새벽에 죽었습니다.” “살고 싶었던 그 애를 매일매일 죽이던 것들을 기억합니다. ‘맛있어 보인다’ ‘내가 본 국산 톱10 안에 든다’ ‘그 학교 다니는데 찾아봐야겠다’… 왜 이들은 이런 댓글을 달 수 있었던 것입니까. 누구의 비호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까. 왜 그 애를 죽이고 내 일상을 파괴하도록 방관했습니까.”

지난달 30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는 조금 특별한 추모제가 열렸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를 비롯한 시민단체가 죽음에 이른 불법촬영 및 비동의 유포 피해자를 기리며 ‘이름 없는 추모제’를 마련한 것. 추모제에 모인 시민 200여명은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비동의 ‘몰카’ 유포는 강력 범죄다” 같은 포스트잇 메시지를 남기고 촛불 곁에 조화를 헌화하며 피해자들을 추모했다. 다만 이날 추모의 대상이 된 고인들의 실명이나 사진은 찾아볼 수 없었다. ‘누군가 나를 알아볼까’ 하는 두려움 속에서 극단적인 선택에 이른 이들은 마지막 순간에도 피해자임을 숨겨야 했다. 이름은 지워지고 ‘야동’ 속 신체로만 남은 사이버성폭력 피해자들의 모습이었다.



◇‘웹하드 불법촬영물과의 전쟁’ 6개월=수사당국이 불법촬영물 유포의 핵심 연결고리로 지적된 웹하드와의 전쟁을 선포한 지 반년이 지났다. 경찰은 지난해 8월 사이버성폭력 특별수사단을 꾸려 100일간 특별단속을 진행해 유포 사범 등 3,660명을 검거하고 133명을 구속하는 성과를 올렸다. 이 과정에서 웹하드협회(DCNA·디지털콘텐츠네트워크협회)가 회원사들이 수사망을 피할 수 있게끔 ‘지휘자’ 역할을 한 정황도 드러났다. 지난달에는 경찰 수사에 대비해 압수수색영장 사본 등 수사 정보를 공유하고 증거를 없앤 웹하드협회 회장과 관계자가 검거됐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협회가 회원사들에 대한 경찰의 수사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해 다른 회원사에 중계하고 핵심 증거를 미리 삭제하게 하는 방식으로 경찰 수사를 방해하는 핵심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웹하드 카르텔’의 작동 방식이 고도화한 모습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그 사이 사이버성폭력 범죄는 줄어들지 않고 이어졌다. 여성가족부는 산하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를 통해 지난해 개소 이후 8개월간 3만3,000건이 넘는 피해를 지원하고 이 중 2만9,000여건에 대한 삭제를 지원했다. 피해자 한 명의 불법촬영물이 3,000회 가까이 유포된 경우도 있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접수된 피해 건수도 지난해 1만7,000건이 넘어 4년 만에 10배가량 폭증했다.


◇정부 종합대책, 이번에는 작동할까=같은 기간 혜화역 ‘불편한 용기’ 집회가 이어지면서 정부도 대책 마련에 절치부심했다. 지난달 24일 국정현안조정회의에서는 “웹하드 카르텔을 뿌리 뽑겠다”며 모니터링 강화, 단속·처벌 강화, 유착구조 해소를 골자로 하는 대책안이 쏟아졌다. 정부 종합대책안에는 △모니터링 대상을 모바일 기반 웹하드로 확대 △웹하드 사업자가 즉시 삭제·차단 조치를 하지 않으면 방조 혐의로 수사 착수, 과태료 2,000만원 부과(5월 시행) △심의기간 3일→24시간 단축 △헤비업로더, 프로그램 개발자, 광고주, 필터링 업체 등 집중 단속 △주요 가담자 구속수사·징역형으로만 형사 처벌 등 다양한 대책이 담겼다. 웹하드-필터링-디지털 장의업체 간 유착관계를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상호 지분 소유를 금지하고 불법촬영물로 얻은 범죄수익을 몰수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겠다는 계획도 나왔다.

정부 대책을 통해 불법촬영물에 대해 유일하게 접속 차단 권한을 가진 방심위의 역할이 중요하게 떠올랐다. 하지만 지난해 방심위가 디지털 성범죄 예산으로 26억4,500만원을 신청했다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한 푼’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번에도 대책이 ‘말잔치’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영상 심의기간을 단축하기 위해서는 방심위 인력 충원과 함께 전자심의 체계 구축 등 시스템 개선이 뒤따라야 하는데 이를 위한 예산이 전혀 확보되지 않은 것이다. 강상현 방심위원장은 기자간담회를 통해 “최근 디지털 성범죄나 불법음란물 유통이 크게 늘었는데도 국회에서 관련 예산이 전액 삭감돼 사회적 관심과 우려가 큰 긴급 사안에 대한 지원이 없어 황망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여가부와 시청자미디어재단의 모니터링 예산은 늘어났는데 이에 따라 업무가 증가하는 방심위의 심의 인력과 예산은 그대로인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법 개정·인공지능(AI) 기술 개발 등 뒤따라야=현장 활동가와 경찰은 적절한 법 개정과 제도적 조치가 동반돼야 한다고 말한다. 서승희 한국사이버폭력대응센터 대표는 “최근 피해지원 사례가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은 아니지만 불법촬영물 유포를 방치하던 웹하드와 불법사이트가 위축되면서 유포 규모가 축소됐다”면서도 “웹하드 사업자들의 불법적 행태를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을 통해 규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업자가 불법행위에 대해 조치하지 않으면 2,0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받도록 지난해 전기통신사업법이 개정됐으나 시민단체는 모든 불법정보에 대한 필터링을 의무화해야만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한편 일선 사이버성폭력 담당 경찰은 인력 충원과 기술 개발을 가장 큰 과제로 꼽았다. 서울 일선서 사이버수사팀 관계자는 “유포 범죄 특성상 수사 착수 단계에서 피해 규모가 특정되지 않으면 유포 범위에 대해 경찰관 수 명이 달라붙어 웹하드 사이트 전체를 들여다봐야 하는 실정”이라며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자동 필터링 기술 개발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경찰청은 올해 들어 전국 17개 지방청에 설치된 사이버성폭력 전담 경찰 91명을 정식 직제화했다.
/오지현기자 ohj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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