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턴 "선박간 환적금지" 옥죄는데..."경협" 강조하는 文

볼턴 "비핵화, 경제발전안 담은
2개 문서 건넸지만 金 수용 안해"
美, 다른나라에 北압박 주문 불구
文 '금강산 관광 재개 카드' 만지작
한미 대북정책 또 엇박자 보여

2차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된 가운데 한미의 대북정책에서 서로 다른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의 대북 압박 강화를 시사하는 발언이 나온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은 4일 남북 경협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고 각 부처에 “제재의 틀 내에서 남북 관계 발전을 통해 북미 대화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을 최대한 찾아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판문점선언·평양공동선언에서 합의된 남북 협력 사업들을 속도감 있게 추진해주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이날 보고에서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재개 방안을 마련해 미국과 협의를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개성공단은 유엔 제재로 가동이 어렵고 금강산관광도 대금의 ‘현물 지급’ 등 우회로를 찾아야 한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할 수 있는 폭이 어느 정도 되는지 최대한 찾아보고 미국과 협의하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이 지난 1월28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 볼턴 보좌관은 3일 미국 CBS·폭스뉴스·CNN방송에 잇따라 출연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원하는 비핵화 요구사항을 담은 ‘빅딜’ 문서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건넸다고 말했다. /워싱턴DC=AFP연합뉴스

하지만 볼턴 보좌관은 이에 앞선 3일(현지시간) 미 방송들과의 연쇄 인터뷰를 통해 “애초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불러들인 경제 제재를 계속하는 것을 검토할 것”이라며 “선박 간 환적을 못 하게 더 옥죄는 방안을 들여다보고 있고 다른 나라들과도 북한을 더 압박하게끔 대화하고 있다. 북한은 비핵화를 할 때 제재해제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해법으로 경협을, 미국은 제재를 내건 셈이다.

북한의 어떤 조치를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로 볼지에도 기류가 엇갈리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영변 핵시설이 전면적으로, 완전히 폐기된다면 북한 비핵화는 진행 과정에 있어서 되돌릴 수 없는 단계로 접어든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제재 완화의 시점을 “북한의 비핵화가 되돌릴 수 없는 단계로 진입했을 때”라고 말해왔다. 그러나 어떤 조치를 되돌릴 수 없는 단계로 볼지는 말하지 않았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영변의 완전한 폐기’로 규정했다. 그러나 미국의 생각은 다른 것으로 보인다. 볼턴 보좌관은 북한이 제시한 영변 핵시설 폐기에 대해 “매우 제한적인 양보로 노후화된 원자로와 우라늄 농축, 플루토늄 재처리 능력의 일부분이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기류 차이로 한미 공조에 틈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서울경제신문 펠로(자문단)인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이번 북미정상회담을 보면 미국은 ‘영변은 이미 노후화됐고 강선에서 활발한 우라늄 생산이 이뤄지고 있다’고 판단한 듯하다”며 “한미가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를 보는 기준이 다른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날 회의에서 각 부처는 북미를 중재할 방안들을 내놨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스웨덴에서 있었던 남북미 회동과 같은 1.5트랙 협의를 개최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보고했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3월 중 남북군사회담을 개최해 올해 안에 9·19평양군사합의의 실질 이행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문 대통령은 “중재안을 마련하는 것보다 급한 것은 미국과 북한이 모두 대화의 궤도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며 “지금까지 어렵게 여기까지 왔지만 무너진 것은 순간이다. 북미 모두 궤도에서 벗어나지 않게 인내심을 갖고 최선을 다하자”고 당부했다. 이와 관련해 통일부는 “북한이 이번 회담 결과를 평가하고 대미·대남전략을 재검토하는 과정을 거칠 것이며 북한 내부 정치 일정과 상황 정리에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보고해 향후 북미 대화 재개에 시간이 걸릴 것을 시사했다.

이날 문 대통령은 북미회담 결과에 아쉬움을 표하면서도 긍정적인 면을 부각시키는 데 주력했다. 문 대통령은 “북한의 실질적 비핵화 조치에 미국의 상응 조치를 함께 논의하는 포괄적이고 쌍무적인 논의 단계로 들어섰다”며 “대화의 큰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또 “북한 내 미 연락사무소 설치가 논의됐다”며 “영변 등 핵시설이나 핵무기 등 핵물질이 폐기될 때 미 전문가와 검증단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다는 실용적 의미와 양국 간에 관계 정상화로 가는 중요한 과정으로서 큰 의미”라고 진단했다. 아울러 문 대통령은 “합의 불발에도 양 정상이 비난하지 않고 긴장을 높이지 않았다”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신뢰와 낙관적인 전망을 밝힌 점, 제재나 군사훈련 강화 등에 의한 대북 압박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한 점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번 회담이 더 큰 합의로 가는 과정이라는 기대를 가질 수 있게 해줬다”고 말했다.

/이태규기자 class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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