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건우"연주는 사라지지만 녹음은 영원히 남아"

■'앨범 '녹턴'으로 돌아온 '건반 위의 구도자'
나만의 음악 정성껏 전달할 것
케이스 안쪽 문구까지 직접 선택
문화 향유는 모든 사람의 권리
3~4월엔 전국 11곳서 투어공연
스베틀라노프 심포니와 협연도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5일 서울 마포구 마포아트센터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주도 좋지만 이제는 녹음에 더 신경을 쓰고 싶어요. 무대가 끝나면 연주는 사라지지만 녹음은 영원히 남으니까요. 내 나름대로, 내가 전달하고 싶은 음악을 정성껏 하나씩 들려주고 싶어요.”

피아니스트 백건우(73·사진)는 5일 오전 폴란드 작곡가 쇼팽의 ‘녹턴’ 1~21번 전곡 발매를 기념해 서울 마포구 마포아트센터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일흔을 넘긴 나이에도 연습과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는 덕분에 ‘건반 위의 구도자’라고 불리며 앨범 발매는 6년만이다. “쇼팽을 가장 잘 대변하는 곡이 ‘녹턴’이라고 생각했어요. 쇼팽은 대중의 평가보다 ‘자신과의 대화’를 중시하면서 연주에 몰두하는 사람이었는데 저도 신규 앨범을 녹음하면서 그런 자세를 많이 떠올렸습니다.”


‘녹턴’은 피아노를 위해 작곡된 소곡을 일컫는 용어로 야상곡이라고도 불린다. 이번 앨범 케이스 안쪽에는 ‘고요한 밤에는 아름다운 화음을 내는 게 제격이야’ 문구 하나가 삽입돼 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글귀로 백건우가 직접 고른 것이라고 한다. “옛날부터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울리면서 야상곡과 너무 잘 어울리는 문장이라고 생각했어요. 이 문장을 읽으면 누구든 야상곡을 듣기 위한 마음의 자세를 제대로 갖출 수 있을 겁니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인 백건우는 20대 초반이던 1969년 이탈리아 부조니 국제 콩쿠르에서 특별상을 받으며 이름을 알렸다. 이후 독일 나움부르크 콩쿠르 등 주요 경연대회에서 잇달아 수상한 뒤 본격적으로 유럽 활동을 시작했다. 1987년 BBC 심포니와 협연한 데 이어 1991년에는 프로코피예프 탄생 100주년을 맞아 피아노 협주곡 전곡을 연주하며 주목을 받았다. 2007년 녹음을 완성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집은 지금까지도 세계 클래식계의 기념비적인 성과로 꼽힌다. 1960~1970년대를 대표한 ‘은막의 스타’이자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에 출연한 배우 윤정희의 남편으로도 유명하다.

피아니스트 백건우(가운데)가 5일 서울 마포구 마포아트센터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날 간담회는 ‘녹턴’ 전곡 앨범 발매 외에 3~4월 열리는 전국 투어 공연과 러시아 국립 스베틀라노프 심포니 협연 등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나누기 위해 마련됐다. 백건우는 신규 앨범에 수록된 곡 가운데 6개를 뽑고 쇼팽의 또 다른 곡인 왈츠와 즉흥곡 등을 더해 3~4월 전국 투어에 나선다. 12일 마포아트센터를 시작으로 4월 20일까지 군포·여주·과천·부산·대구·춘천 등 총 11곳에서 공연을 펼친다. 백건우는 ‘국내 관객을 만날 때에는 반드시 여러 도시를 돌아다닌다’는 확고한 원칙을 지닌 연주자로 잘 알려져 있다. “문화를 즐기는 것은 모든 사람의 권리입니다. 그 권리를 충족시켜주는 것이 우리들의 임무이지요. 직접 들어보지 않으면 음악의 훌륭함도, 음악을 듣는 즐거움도 알기 힘듭니다. 좋은 음악을 최대한 많은 곳에서 들려드리는 것은 저의 즐거움이기도 합니다.”

백건우는 전국 투어 중간중간 러시아 국립악단인 스베틀라노프 심포니의 내한 공연에도 협연자로 참여한다. 이달 29일과 30일에는 각각 안동문화예술의전당과 경기도문화의전당에서, 내달 2일에는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무대다. 백건우는 이 공연에서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한다. /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 사진제공=빈체로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5일 서울 마포구 마포아트센터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