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기칼럼] 경사노위 탄력근로제 합의 꼭 필요했을까

한림대 경영학부 객원교수
전한국노동연구원장
'국회 처리' 정치적 합의 해놓고선
경사노위 첫 의제로 올린건 잘못
단일 이슈 대타협 모색은 모험적
위원간 불신 등 후유증만 남긴셈




지난달 19일 마련된 ‘탄력근로제 개선을 위한 합의문’이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마지막 문턱을 넘지 못하고 또 다른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마무리가 어떻게 되든 이미 대타협의 감동이나 경사노위의 첫 결실이라는 정치적 상징성은 크게 퇴색됐다. 3월 임시국회에서 또 한 차례의 공방이 예상된다. 국회로 이송되는 경사노위 타협안에 갈등의 불씨가 남아 있는데다가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지난주 경사노위 타협안에 반대하는 단체와 전문가들을 모아 토론회까지 개최하며 국회 심의 과정의 수정을 벼르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한 것이기는 하지만 최종결론은 국회의 몫으로 남게 됐고 경사노위는 출범 초부터 예상하지 못한 후유증을 앓게 됐다.


매듭이 꼬인 표면적인 이유는 문재인 대통령까지 참석하기로 했던 경사노위 본위원회(이달 7일)가 노동계 위원 3인의 불참으로 파행에 이른 것이다. 경사노위의 대주주라고 할 수 있는 한국노총과 경총이 어렵사리 합의에 도달했음에도 청년과 여성·비정규직을 대표하는 계층별 위원 3인이 합의 절차와 내용을 문제 삼아 공동성명(6일)을 발표하며 본위원회 보이콧을 선언하면서 꼬이기 시작했다. 이후 사태전개로 봐 경사노위 지도부나 정부 관계자 또는 한국노총 지도부 누구도 이런 돌발변수를 예상하지 못했던 듯하다. 다 잡아놓은 대통령 행사까지 무산시킨 데 격앙한 경사노위 문성현 위원장과 박태주 상임위원은 기자회견을 열고 이들의 본회의 불참을 보조적인 역할에 불과한 일부 위원에 의해 전체가 훼손되는 사태라고 규정하며 의사결정 구조를 바꿔서라도 재발을 방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11일 회의를 다시 열기 위해 주말 동안 이들을 설득해보겠지만 불참을 고수할 경우 “단호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 본위원회의 논의 결과라고 했다.

곧 밝혀졌지만 이는 너무 성급한 대응이자 잘못된 처방이었다. 마치 대주주들의 결정을 대표성도 별로 없는 소액주주들이 훼방 놓으려 한다는 식의 접근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경사노위는 앞으로 더 큰 어려움에 빠져들 수 있다. 사회적 대화기구의 특성상 18명의 경사노위 위원들은 모두 동등한 자격을 갖는 대통령 위촉직이다. 설사 취약계층을 대변하는 위원들이 속한 조직이 약소하더라도 그들이 대변해야 하는 비정규직과 여성·청년의 문제에 관한 한 충분한 전문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대표들이다. 이들의 말 바꾸기를 따지기 전에 회의 개최 이전까지 있었던 이들과의 소통 과정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소통의 일차적인 책임은 노동계를 대표해 노동시간제도개선위원회 협상에 참여했던 한국노총에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한국노총은 협상 과정에서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공정대표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경사노위 지도부는 합의안이 도출된 후에라도 이들의 목소리를 녹여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따져봐야 한다. 이들이 논란의 중심에서 스스로 결정의 책임을 지게 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치밀한 과정관리가 있어야 했다.

또 하나의 쟁점은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한다는 정치적 합의가 있었음에도 탄력근로제 개편을 새로 출범하는 경사노위의 첫 의제로 올렸어야 했느냐는 점이다. 지난해 11월 문 대통령은 5당 원내대표와 탄력근로시간제를 포함한 12개항의 개혁과제 추진에 합의했고 1월 초에도 그 이행을 촉구한 바 있다. 그럼에도 1월 말 새로 출범하는 경사노위가 이를 첫 의제로 삼았던 데에는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의 의중이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그는 어느 자리에선가 지난해 최저임금법 개정을 보고 탄력근로 문제도 국회에만 맡겨놓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굳혔다고 했다.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노사가 합의했다면 상여금 일부만 산입범위에 넣는 선에서 끝낼 수 있었는데 민주노총이 반대하는 바람에 국회로 넘어갔고 결국 복지수당까지 포함하게 됐다는 비판이다. 맞는 분석이고 그의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

정부의 입장은 다를 수 있다. 이미 큰 틀이 정해졌고 국회 논의가 임박한 상황에서의 사회적 대화는 실익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노동법 그것도 탄력근로와 같은 단일 이슈를 갖고 대타협을 모색한다는 것은 너무 모험적이다. 결과론이기는 하지만 양 노총의 갈등은 커지고 경사노위 위원들 간의 신뢰에도 금이 가는 후유증만 남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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