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르한 페이지오글루(오른쪽 네번째) 국제통화기금(IMF) 연례협의 미션단장이 1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2019년 IMF 연례협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성형주기자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 경제가 중단기적 역풍을 맞고 있어 9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 편성이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확장적 재정정책 없이는 정부가 올해 예상하고 있는 2.6~2.7%의 성장률이 불가능하다는 경고다. IMF의 이 같은 제안에 따라 문재인 대통령의 미세먼지발 추경 논의가 본격적으로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타르한 페이지오글루 IMF 미션단장은 1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연례협의 결과를 발표하며 “한국 경제의 리스크가 하방으로 향하고 있어 대규모 추경이 필요하고, 추경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한국 정부가 올해 성장률 목표(2.6∼2.7%)를 달성하려면 국내총생산(GDP)의 0.5%를 넘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원화 기준 명목 GDP는 1,782조2,689억원으로, 0.5%는 약 8조9,113억원이다. 이는 지난해에 정부가 편성한 추경(3조8,000억원)의 2.3배에 달하는 규모다. 문 대통령의 지시 이후 정부와 국회를 중심으로 미세먼지 대응, 일자리 창출, 경기부양을 위해 10조원대의 추경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어 IMF의 제안을 계기로 논의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과거에 추경을 집행하는 데까지 수개월이 걸려 효과가 떨어진 점을 감안하면 속도를 내야 한다”고 설명했다.
페이지오글루 단장은 또 금리 인상 기조를 억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은 명확하게 완화적이어야 한다”고 밝혔다. IMF가 이 같은 판단을 내린 것은 투자 및 세계교역 감소로 성장이 둔화하고 있으며 인플레이션 압력은 낮고 고용창출은 부진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아울러 가계부채가 1,500조원을 넘어서면서 가계부채 비율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면서 이에 더해 잠재성장률 감소, 부정적인 인구 변화와 생산성 향상 둔화가 향후 전망을 저해한다고 경고했다.
페이지오글루 단장은 “양극화와 불평등이 우려되고 제조업과 서비스업 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당한 생산성 격차가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IMF의 이 같은 경고는 최근 무디스가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2.1%로 하향 조정한 것과 맥을 같이한다. 내수부진과 투자위축에 이어 그나마 한국 경제를 지탱하던 수출마저 위태로워지면서 경고음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 주요 지표들을 보면 1월 취업자 수 증가는 2만명에도 미치지 못하는 쇼크 수준이었고 2월도 불안감이 높다. 올해 월평균 15만명의 취업자 수 증가 목표 달성이 쉽지 않아 보인다. 무디스에 이어 IMF도 최근 2년간의 최저임금 인상이 “지나치게 빠른 속도”라는 우려를 제기했다. 고용시장 침체는 소비위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수출도 3개월 연속 하락세다. 글로벌 경기둔화로 반도체 등 주력 품목의 수출침체가 장기화되는데다 최근 중국과 유럽 경기도 급격하게 위축되면서 대외환경 불안감 역시 높아지고 있다. 미중 무역 갈등,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 등의 변수도 상존해 있다. 게다가 지난해 일정 부분 민간소비를 떠받쳐왔던 승용차 개별소비세와 유류세 인하 조치가 올 상반기에 종료될 예정이어서 하반기에는 경기침체 국면이 더욱 가속화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IMF는 이러한 진단과 평가를 바탕으로 한국 정부가 금융안정을 유지하는 가운데 경제성장을 지원하며 잠재성장을 제고하고, 과도한 대내외 불균형을 줄이기 위해 추가적인 거시정책과 금융정책·구조정책을 통합한 정책조합을 제언했다. 이를 위해 “단기성장을 지원하고 리스크를 제한하고자 잠재성장률을 강화하는 조치와 함께 추경을 통해 재정지출을 더 확대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또 “중소기업 지원을 통해 혁신성장을 도모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왔으며 금융 리스크를 제한하기 위해 거시건전성 조치의 적용 대상을 확대하고 더 엄격한 수준을 적용해왔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한국은행은 명확히 완화적인 통화정책 기조를 가져야 하고 정부는 금융산업 복원력을 보존하기 위해 적절히 타이트(tight)한 거시건전성 정책을 유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국내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이 사실상 차단된 것이다. 또 고용보호 법률의 유연성을 높이고 사회안전망과 적극적인 노동시장 정책을 더욱 강화해 유연안전성(flexicurity)이 노동시장 정책의 근간으로 채택돼야 한다고 밝혔다. 보육과 아동수당 개선을 포함해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를 확대하는 동시에 진입장벽을 낮추고 기존 사업자에 대한 보호를 완화해 상품시장 규제의 경직성을 해소해야 한다고도 제언했다.
/세종=황정원·빈난새기자 garde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