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석현 두산중공업 고문(전 CTO 겸 기술연구원장)
봄철 미세먼지 대란과 국가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에 힘입어 청정에너지원인 수소와 연료전지에 대한 관심이 높다. 지난 1월17일 발표된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은 우리나라에서 강점을 가진 수소차와 연료전지를 양대 축으로 오는 2040년까지 세계 최고 수준의 수소경제 선도국가로 도약한다는 청사진이다.
수소경제의 경제성과 기술난제들이 여전하고 실현 가능성 논란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비판에만 얽매여 귀중한 기회를 잃어버리기보다 현재의 물결에 동승해 거대 신산업으로 만들어가는 노력이 요구된다. 일본·중국·유럽에서도 수소차 시장과 연료전지 발전을 위한 수소 인프라 구축과 초기 정착을 위한 정부의 직간접 지원정책을 연달아 발표하고 있다. 연료전지를 최초 상용화한 미국은 10월8일(수소원자량 1.008에서 선택)을 ‘국가 수소 및 연료전지의 날’로 지정할 정도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연료전지는 수소 탱크와 함께 차에 싣게 되면 수소차가 되고 수소 생산장치를 부착하면 발전용이 되는 것처럼 기술과 소재·부품산업의 상승 효과가 높고 응용 분야가 다양하다. 연료전지의 개념은 1839년 영국의 물리학자 윌리엄 그로브에 의해 처음으로 시연됐으며 1962년 미 항공우주국의 제미니 우주선 프로그램에 연료전지가 탑재되면서 최초로 상용화됐다. 최초 시연 후 180년이 지난 오늘날 수소연료전지는 한국의 수소경제 실현을 위한 한 축을 담당하게 됐다.
연료전지의 원리는 수소와 산소의 전기화학적 반응을 통해 전기를 만들어내며 열과 물을 부수적으로 생산한다. 발전효율은 35~60% 수준이며 내연엔진과 비교하면 효율이 높지만 배터리보다는 낮다. 연료전지의 폐열을 함께 활용하는 열병합발전에서 전기와 열의 병합효율은 최대 80~90%까지 높아진다.
연료전지의 연료인 수소는 부생수소를 활용하거나 천연가스·액화석유가스·메탄올·석유·석탄가스·바이오매스 등 탄화수소계 연료에서 추출해 사용한다. 최근 주목하는 수소연료는 태양광·풍력 등의 재생에너지로 물을 전기분해해 생산하는 청정수소(green hydrogen)다. 재생에너지와 연료전지의 결합으로 재생에너지의 잉여생산전력을 수소로 전환(Power to Gas·P2G)해 장기간 저장·사용할 수 있고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하는 백업전원의 효과도 있다.
연료전지의 장점은 용도의 다양성 외에 단위에너지 생산에 필요한 시스템이 소형·경량이고, 대기오염물질을 거의 배출하지 않는 청정발전이기 때문에 도심지의 좁은 부지나 가정·건물 실내에도 설치가 용이하다는 것이다. 연료전지에서는 연소과정이 없고 움직이는 구성품이 없기 때문에 전체 시스템의 신뢰성이 높다. 두산에서 공급하는 인산형 연료전지 제품은 무고장 누적 가동시간이 10만시간에 육박하고 있다.
연료전지는 완제품 제조자를 정점으로 많은 소재·부품기업들이 참여하는 생태계를 형성하며 방대한 전후방산업과 연결돼 있어 한국 제조업 부활과 신성장동력의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나라는 수소차·지게차·드론 등에 사용하는 수송형과, 발전용, 가정·건물용, 데이터센터 등에 활용되는 고정형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술과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군사용, 레저용, 전자기기용, 의료용, 비상전원용으로 기존의 배터리팩을 대체하는 휴대형도 유망한 분야다.
연료전지에서 극복해야 할 부분으로는 원가경쟁력, 효율 향상, 원천기술 확보, 소재·부품 공급망 구축 등이 있으며 전국적인 수소 인프라 구축 역시 필요하다. 원가경쟁력은 규모의 경제가 핵심이며 정부의 수소경제 로드맵이 실행되면 대폭적인 양산가격 인하를 기대할 수 있다. 현재까지 국내 연구개발(R&D)은 완성품과 시스템 위주의 기술개발에 집중해, 효율, 내구성, 제품 혁신에 필요한 원천기술과 소재·부품 기술에 대한 투자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다. 고가의 백금 촉매 감소를 위한 신소재 발굴, 고성능 소재·부품 원천기술 확보와 함께 성능과 수명은 두 배로 높이고 가격은 절반으로 낮출 수 있는 혁신기술에 대한 투자와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핵심 소재·부품의 공급망 구축도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