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터통신이 29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베트남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건넨 ‘빅딜 문서’를 입수해 보도했다. /로이터통신 캡처
베트남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건넸다는 ‘빅딜 문서’의 내용이 외신에 의해 일부 공개됐다. 이 문서에는 북한 핵무기와 핵물질을 미국으로 이전시키고, 모든 핵시설과 탄도미사일은 물론 화학·생물전 프로그램까지 모두 해체해야 한다는 매우 포괄적인 요구가 담긴 것으로 나타났다.
로이터통신은 29일(현지시간) 이 문서를 입수해 공개했다고 보도했다. 익명을 요구한 회담 관게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어와 영문 두 가지로 이 문서를 김 위원장에게 건넸다고 말했다.
로이터통신은 문서에 “북한 핵시설과 화학·생물전 프로그램, 관련된 이중 용도 능력, 즉 탄도미사일, 발사대, 관련 시설의 완전한 해체”(fully dismantling North Korea‘s nuclear infrastructure, chemical and biological warfare program and related dual-use capabilities; and ballistic missiles, launchers, and associated facilities)를 요구한 내용이 있다고 보도했다. 로이터는 또 북한 핵무기를 미국으로 넘기라는 요구 외에도 4가지 핵심 사항에 대한 미국의 요구가 이 문서에 담겼다고 보도했다. △핵 프로그램에 대한 포괄적 신고 및 미국과 국제 사찰단에 대한 완전한 접근 허용 △모든 관련 활동 및 새 시설물 건축 중단 △모든 핵 인프라 제거 △모든 핵 프로그램 과학자 및 기술자들의 상업적 활동으로의 전환을 요구했다.
로이터통신은 이를 ‘리비아식 모델’이라고 설명했다.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이 주창해온 이 해법은 먼저 핵을 폐기하고 이를 완전히 검증한 뒤에 수교와 경제지원 등의 보상을 제공하는 ’선(先) 핵폐기, 후(後) 보상‘ 방식이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가 당초 북핵 해결의 기본 원칙으로 제시했던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를 뜻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CVID는 이후 북한이 ’불가역적 비핵화‘에 강한 거부감을 표시하면서 FFVD(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북한 비핵화)로 다소 완화됐다.
이에 따라 북한 측이 밝힌 미국의 ‘한 가지’ 추가 요구가 ‘모든 관련 활동 및 새 시설물 건축 중단’이라는 외교가의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하노이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영변 폐기 대 민생제재 해제‘라는 자신들의 요구에 미국이 ’한가지‘를 더 요구했다고 밝힌 바 있다.
단계적 비핵화와 경제 보상을 원했던 북한에게 미국의 CVID는 받을 수 없는 조건이었을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 싱크탱크 스팀슨센터의 제니 타운 연구원은 빅딜 문서에서 담긴 미국의 요구사항들에 대해 “이는 볼턴 보좌관이 처음부터 원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던 것”이라며 “만약 미국이 정말로 진지하게 협상에 임하려 한다면 이러한 접근법은 취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걸 알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타운 연구원은 “이러한 요구는 그동안 몇번이나 (북한에)거절 당해 애당초 가능성이 없었던 것”이라며 “그런데도 계속 거론하는 것은 (북한에) 다소 모욕적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변재현기자 humblenes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