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바로 엇박자 정책]정부, 전기차 보급 4,600억 투입…지자체는 경유보조금 2.2조 지원

■헛도는 경유차 대책
지자체 운수업계 반발에 눈치보기
경유 인상분만큼 지원금 늘리며
경유버스 5년전보다 492대 늘어

서울의 한 육교 위에서 환경단체 관계자들이 경유버스 진입금지를 촉구하는 캠페인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정부와 지자체는 미세먼지의 핵심 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 경유차를 줄이기 위해 다양한 정책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노후 경유 화물차나 경유 버스를 LPG 등 가스차로 전환하면 구매비 일부나 보조금을 지원한다. 아예 경유에 붙는 세금을 인상하는 방안도 검토 대상이다. 문제는 한쪽에서는 경유차를 없애야 한다며 정부 예산을 투입하면서 또 다른 쪽에서는 경윳값을 깎아준다고 보조금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1일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전국 지자체가 한 해 화물차 업계에 지급하는 경유 보조금은 1조8,000억원, 버스 업계에 지급하는 보조금은 4,000억원 수준에 달한다. 정부는 미세먼지 저감을 위해 경유차를 줄이겠다며 노후 경유차 폐차나 전기차 보급 등에 지난해 4,600억원을 투입했지만 거꾸로 경유 보조금에 들어가는 돈이 훨씬 많은 셈이다. 이렇다 보니 전국에서 운행 중인 버스의 39%가 경유 차량이고 5년 전에 비교하면 오히려 492대가 늘었을 정도로 대책의 효율성이 떨어진다. 정부의 세제 개편안을 권고하는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재정개혁특별위원회는 경유세 인상을 권고하기도 했다. 버스와 화물차 업계에 보조금을 주면서 경유세를 인상하는 모순적인 정책 권고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정부의 무능함과 세금 낭비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며 “큰 정책만 발표하고 나몰라라 하는 탁상공론 정책은 나와서는 안된다”고 꼬집었다.

상황이 이렇게 된 건 2005년 5월 정부가 경유 소비자 가격을 휘발유 대비 70%에서 85%로 인상하기로 결정하고 특별소비세를 인상하면서 버스업계와 운수업계의 비용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유가 보조금을 지급하면서부터다. 당초 한시적으로만 운영될 예정이었지만 ‘보조금 지급 중단’이라는 이야기만 나오면 업계의 반발이 극심해 계속 유지될 수밖에 없었다. 정부도 이러한 상황 탓에 유가 보조금에 손을 대기가 쉽지 않다. 국토부의 한 관계자는 “지난 2008년 화물연대의 대규모 파업의 이유 중 하나도 유가보조금 때문이었다”며 “버스업계도 적자가 심해 유가 보조금을 없애면 요금 인상을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일의 순서가 뒤바뀌었다고 진단한다. 한 세제 전문가는 “경유차 교체 보조금 지급이나 경윳값 인상 등의 이야기가 나오기 전에 유가 보조금을 손 봐야 하지만 정부가 거꾸로 일을 진행하다 보니 생긴 문제”라며 “유가보조금이 현행 체계로 유지가 된다면 미세먼지 저감을 위한 유류세 개편은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세종=강광우기자 press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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