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라 바리케이드 XT97/사진제공=휠라코리아
#송파구 잠실동에 사는 직장인 허민정씨는 중고생 두 딸에게 한 스포츠 매장에서 요즘 유행한다는 어글리 슈즈를 한 켤레씩 사줬다. 유행인데다 특이한 모양에 사실 가격 걱정을 했지만 원하는 제품으로 총 2켤레 구매했는데도 13만원대. 비교적 부담 없는 가격이었다. 그는 “원하는 제품을 사주고 싶어도 너무 비싸 망설였는데 최근 인기아이템 운동화 가격이 6만원대라 부담이 적었다”고 말했다.
밀레니얼 세대의 필수템인 슈즈시장에선 ‘그레셤의 법칙’이 통하지 않았다. 좋은 품질의 화폐와 나쁜 품질의 화폐가 동시에 존재할 때 품질이 떨어지는 화폐만 남고 좋은 화폐는 사라진다는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驅逐)한다’는 그레셤의 법칙은 시장에서 대부분 통용되지만 국내 슈즈 업계에선 예외가 됐다. 휠라가 쏘아 올린 6만원 대 신발 ‘클린소비’ 나비효과 덕이다.
2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휠라가 인기 운동화를 6만원대에 선보이면서 운동화 시장은 기존 8만~12만원대에서 6만원대의 반값 시장으로 재편되고 있다. 유통업체들이 가격 경쟁단계로 들어가면 제 살 깎이 식의 이전투구 이벤트로 끝나는 경우가 많지만 지난 2년간 지속해 온 휠라의 클린소비 효과는 나이키·아디다스 등 콧대 높은 글로벌 브랜드 가격까지 끌어 내리며 건강한 소비를 만들어냈다. 양화가 악화를 구축한 셈이다. 밀레니얼 세대가 가장 많이 소비하는 패션 아이템인 운동화 시장에서 휠라가 건강한 소비를 이끌어 낸 방아쇠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휠라가 2017년 6만 9,000원 운동화를 처음 내놓을 당시만 해도 업계에선 지속가능하지 않을 것이란 우려와 심지어 일시적인 ‘가격쇼’라는 비아냥까지 나왔다. 그러나 윤근창 휠라코리아 사장은 2017년 휠라의 리브랜딩을 주도하면서 ‘소싱력 강화’와 ‘홀세일(도매형태)’ 유통 병행을 통해 가격을 끌어 내리는 작업을 단행했다. 중국 푸젠성 진장 지역의 자체 글로벌 신발 소싱센터를 통해 신발 샘플을 100% 자체 개발하면서 바잉 파워를 확대하고 가격 경쟁력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휠라의 착한소비 나비효과는 나이키, 아디다스 등 글로벌 브랜드의 가격 마저 6만원 대로 끌어내렸다. 올해 ABC마트 랭킹 20위 중 6만원대 이하 제품이 12개에 달한다. 나이키는 SB 델타포스 벌크(6만9,000원)를, 아디다스는 니짜(6만9,000원)를 각각 출시했다. 프로스펙스는 지난해 말 어글리슈즈 스텍스(6만9,000원)를 출시해 온라인 플랫폼 무신사 스토어에서 주간 스니커즈 판매순위 1위를 기록했다. 푸마는 스매시 벌크(6만9,000원)를 출시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휠라를 필두로 밀레니얼 세대에게 6만 9,000원짜리 스포츠 슈즈여야 성공한다는 공식이 생겨나고 있을 정도로 6만 원대가 합리적 가격대로 소비자에게 인식되고 있는 만큼 당분간 이 같은 현상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보리기자 bori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