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원합의체. /연합뉴스
다른 사람의 정자를 받아 인공수정을 통해 낳은 자녀도 법률상 무조건 친자식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 대법원이 오는 5월22일 공개변론을 연다.
대법원에 따르면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5월22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서울 서초동 대법원청사 2층 대법정에서 A씨의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 상고심에 관한 공개변론을 연다. 대법원은 해당 변론을 참고해 늦어도 올 하반기 최종 선고를 내릴 방침이다.
지난 1985년 결혼한 A씨 부부는 A씨가 무정자증으로 아이가 생기지 않자 제3자에게 정자를 제공받아 1993년 시험관시술로 딸을 낳았다. 이후 A씨의 부인은 혼외 관계로 1997년 둘째 자녀를 더 낳았다. 둘째 역시 A씨와 부인의 자식으로 출생 신고했다.
하지만 A씨가 부인과의 잦은 다툼 끝에 2013년 협의이혼을 신청했다. 이 과정에서 두 자녀는 처음으로 그들이 A씨의 친자식이 아니란 사실을 알게 됐다. A씨는 부인과 양육비 갈등을 겪던 상황에서 자신과 두 자녀 간에 친생자 관계가 없음을 확인해 달라는 소송을 냈다. A씨는 첫 딸 인공수정에 대해서도 “묵인은 했어도 동의하지는 않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1심과 2심은 “A씨가 제3자의 정자를 사용한 인공수정에 동의한 이상 소송 제기 자체가 부적합하다”며 A씨의 패소를 결정했다. 둘째 자식에 대해서도 “입양의 실질적 요건을 갖췄다”며 양친자 관계가 성립됐다고 봤다.
민법 제844조·제847조는 아내가 혼인 중 임신한 자녀는 거의 모든 경우에 한해 남편의 친생자로 추정하도록 한다. 과학이 발달하기 전 혼인 중 여성이 낳은 아이에 대해 남편의 자녀임을 일일이 증명해야 하는 수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지난 1983년 대법원 판례는 부부 중 한 명이 장기간 해외에 나가 있거나 사실상의 이혼 관계처럼 별거하는 경우 등 아내가 남편의 자녀를 임신할 수 없는 사정이 명백한 경우에만 예외를 인정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문제는 그 사이 과학이 발전하면서 제3자 정자를 이용한 인공수정 등 새로운 임신·출산 방법이 개발됐다는 점이다. 여기에 친부모와 친자식 관계를 규정하는 사회인식도 변했고 친생자 관계를 입증하는 어려움도 크게 해소됐다. 이미 형성된 사회적 친자관계를 중시하는 기존 법리를 재정립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다음 달 열리는 공개변론에서도 새로운 친생자 관계 설정을 놓고 양측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법원은 대한변호사협회, 법무부, 보건복지부, 행정안전부, 여성가족부, 한국민사법학회, 한국가족법학회, 한국가족관계학회, 한국헌법학회 등에 참고 의견서 제출을 요청하고 민사법·가족법 전문가, 담당 부처 관계자 등을 참고인으로 불러 의견을 청취할 예정이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