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오후 청와대에서 군 장성 진급 및 보직 신고식 후 접견실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청와대에서 연 군장성급 진급신고에서 “종전 후 거의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한미동맹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독자적인 전시작전권도 가지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 것은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강한 국방력을 바탕으로 한반도에서 주체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이어 “결국 힘이 없으면 평화를 이룰 수 없다”며 “우리 힘으로 국방을 지키고 끝내는 분단도 극복하며 한미 동맹과 함께 동북아 평화까지 이뤄내는 강한 국방력을 갖는 데 절치부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사전 원고 없이 한 모두발언에서 ‘절치부심’을 특히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절치부심은 이를 갈고, 가슴을 새기며 치욕이나 국란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정신 자세”라며 “역사를 되돌아보면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고 평가했다. 문 대통령은 “임진왜란 이후 불과 30년 만에 정묘호란을 맞고 다시 병자호란을 겪는 데 9년이 걸렸다”며 “그동안 전혀 군사력을 강화하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 대통령은 “인조가 청나라에 무릎걸음으로 다가가서 3배를 하고 9번 이마로 땅을 찍는 ‘삼배구고두’ 항복 의식을 했다. 임금 이마에서 피가 흘렀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후 35년간 식민지 생활을 했고 남북으로 분단됐으며 유엔군 참전으로 겨우 나라를 지킬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앞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시정연설 중 부정적인 면은 거의 언급하지 않았고 긍정적인 면을 집중 부각시켰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3차 북미 정상회담 의사를 밝혔다”며 “변함없는 의지를 높이 평가하며 크게 환영한다”고 밝혔다. 또 “김 위원장은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을 철저히 이행해 남북이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며 “이 점에서 남북이 다를 수 없다. 정부는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공동선언을 차근차근 이행하겠다”고 강조했다.
판문점선언 등에는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재개와 남북 철도 연결 등 경협 사업이 포함돼 있다. 비록 ‘차근차근’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이 같은 사업을 추진할 의향이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힘으로써 북한을 남북 정상회담장으로 견인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한국이 오지랖 넓은 중재자’라고 하는 등 김 위원장의 다소 모욕적 언사에는 코멘트하지 않았다. 사실과 다른 평가도 있었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구축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안팎으로 거듭 천명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의 연설 전문을 살펴보면 비핵화를 하겠다는 내용은 없었다.
문 대통령의 발언 중 대북특사가 빠진 것도 유념할 부분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대북특사 파견조차 원활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이날 문 대통령의 언급이 사실상 북한에 대한 공개 메시지로 보이는데 바꿔말하면 우리의 의중을 북한에 전달할 만한 물밑 대화창구가 없는 것을 드러낸 것이나 다름없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야당은 비판 수위를 높였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한미가 실질적 합의에 이르지 못했는데 문 대통령은 정상회담이 잘 됐다고 평가한다”며 “요즘 말로 ‘정신 승리’”라고 꼬집었다. /이태규·안현덕기자 classic@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