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오른쪽 두번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가업상속 지원세제 개편방안 당정 협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획재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11일 발표한 ‘가업상속지원세제 개편방안’은 지난 4월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제시한 초안에서 사실상 반 발짝도 나가지 못했다. 홍 경제부총리가 당시 밝혔던 “사후관리기간 요건 완화 및 업종변경 범위 확대” 정도만 건드렸을 뿐, 업계에서 가장 절실하게 요구한 매출액 기준(3,000억원)과 공제한도(500억원) 손질은 무산됐다. 상속세를 최장 20년간 나눠낼 수 있는 연부연납 특례제도가 일반 중견·중소기업으로 확대되는 안만이 새롭게 눈에 띈다.
기재부는 심지어 여당 의원들이 대상을 확대하자고 요청해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상속세 공포에 기업 매물이 늘어가고 해외 이전을 하겠다고 호소해도 ‘부의 세금 없는 대물림’이라는 비판만 피하겠다는 계산으로 풀이된다. 그 이면에는 청와대와 시민단체의 부정적 인식에다 국회에 여야 의원들의 개정안이 여럿 발의돼 있어 정부가 몸을 사렸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향후 세법심사 과정에서 병합심리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굳이 대상 확대를 정부가 직접 손대지 않고 책임을 미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때문에 가업상속공제를 받은 기업이 업종·자산·고용을 유지해야 하는 사후관리 기간이 현행 10년에서 7년으로 단축되고, 업종변경 범위도 기존 한국표준산업분류상 소분류 내에서 중분류 내까지 허용된다. 예를 들어 제분업과 제빵업은 중분류상 같은 식료품 제조업이어도 소분류가 달라 업종 간 전환을 할 수 없었으나 앞으로는 가능해지는 식이다. 중분류가 다른 경우에도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가 업종 간 연관성이 있다고 승인하면 변경을 허용해준다. 중견기업에 대해서는 상속 당시 정규직 근로자 수의 120% 고용유지 의무를 100%로 완화하고, 사후관리 기간 내 자산처분에 대해서도 불가피한 경우 예외사유를 추가하기로 했다.
이번 개편안은 기업인들의 부담을 다소 덜어줄 수도 있지만 ‘반기업정서’ 속 일부 비판을 의식해 반쪽 개편을 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상속세율 개편이나 대상 확대는 아예 빠졌고 현재 대상인 기업들에만 요건을 완화했기 때문이다. 현재는 까다로운 요건 탓에 가업상속공제의 연간 이용 건수와 금액이 지난 2017년 기준 91건, 2,226억원에 불과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았다.
특히 우리나라 상속세 최고 세율(명목 기준)은 일본(55%) 다음으로 높은 50%에 달한다. 여기에 최대주주 지분율 50% 초과 시 상속세가 할증되는 ‘최대주주 할증 과세’까지 붙어 최고 세율은 65%까지 올라간다. 상속세가 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2개국 중 우리나라의 명목 최고세율(65%)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OECD 국가 중 13개국에는 상속세 자체가 없다.
국회에서도 이원욱 민주당 의원 등 여당에서까지 매출액 기준을 5,000억원으로 높이는 대상 확대를 추진했는데 기재부가 끝까지 막은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이다. 민주당 가업상속 및 자본시장 과세개선 태스크포스(TF)에서는 매출 기준 확대와 고용유지 요건 완화를 핵심사항으로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여당에서는 ‘고용 인원’만 기준으로 삼지 말고 ‘인건비 총액’을 함께 고려하는 안도 제시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김병규 기재부 세제실장은 “국회에 다수의 의원입법안이 제출돼 있어 (확대 여부를) 논의하게 되겠지만, 앞서 수차례 밝혔듯 공제 한도와 매출액 기준을 올리지 않는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국회에는 매출액 기준을 2,000억원으로 낮추는 안에서 5,000억원에서 많게는 1조원까지 대폭 상향하는 내용의 법안들이 다수 발의돼 있다. 향후 국회 논의 과정에서 치열한 공방과 함께 바뀔 가능성도 조심스레 점쳐진다. /세종=황정원기자 garde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