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어느 날 미국 워싱턴 D.C. 거리에 한 남자가 쓰러진 채 발견됐다. 그는 목격자의 신고로 현장에 도착한 응급구조대원 앞에서 구토를 했다. 대원들은 술 냄새를 맡았다. 남자의 머리 부분에 피가 보였고, 병원으로 이송되는 동안 거의 의식이 없었다. 응급구조대원들은 취객이라고 단정 지으며 남자를 병원에 넘겼고, 응급실에서는 제대로 남자를 진단하지 않고 술이 깨도록 내버려 뒀다. 구조대원들은 동공 축소와 같은 내용은 보고하지도 않았다.
알고 보니 남자는 단순 취객이 아니라 강도들에게 파이프로 머리를 맞고 쓰러진 유명 언론인 데이비드 로젠바움이었다. 응급구조대원의 초진 이후 8시간이 더 지나서야 뇌수술을 받았지만, 그는 다음날 사망했다. 신원 미상의 취객이 뉴욕타임스(NYT) 출신으로 밝혀지자 상황은 급변했다. 추도식에는 거물 정치인들이 대거 참석했고, 당국은 비상 대응 체계를 대대적으로 점검했다. 현금 270달러와 신용카드를 훔친 범인 햄린과 조던은 각각 26년형, 65년형을 받았다.
취객인 줄로만 알고 구조행위조차 대충 해버리는 바람에 로젠바움은 죽고 말았다. 구조 당시부터 유명 언론인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더라면 죽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저자인 법학자 애덤 벤포라도는 ‘언페어’에서 바로 이러한 ‘불공평한’ 과정이 미국 사법체계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음을 풍부한 사례를 통해 증명한다. 피의자의 직업과 외모, 재산 등 범죄 실체와 그다지 관련이 없는 요소들이 편견을 발동시키면서 사회적 약자와 평범한 사람들의 피해가 가중된다는 사실이 마치 추리소설처럼 펼쳐진다. 책의 사건들은 죄와 벌이 증거와 철저한 논리에 따라 결정된다는 기대와 믿음을 뒤엎는다.
저자는 수사부터 재판 절차까지 사회적 약자를 위태롭게 하는 불공정을 해결할 개혁안도 제시했다. 경찰 심문 과정에서 인지 면담 기법 활동, 법의학 분석 기술 활용, 스마트폰 어플 개발, 사전 형량 조정 제도 개혁, 가상 재판 도입 등 세세한 해결책부터 근본적으로는 범죄 처벌에서 예방으로 사회자원을 옮겨야 한다는 것이다. 2만원.
/연승기자 yeonvic@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