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적 감사인 지정에 시행을 앞두고 회계법인들의 감사인 등록 신청이 막바지에 이른 가운데 현장에서의 혼란이 커지고 있다. 감사인 지정 대상이 된 기업들은 정부가 개입해 감사인을 지정하는 방식이 감사보수 증가와 감사품질 저하로 이어질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13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5월부터 감사인 등록 신청을 받은 결과, 이달 초까지 ‘빅4’회계법인을 포함한 상당수의 회계법인 신청을 완료했다. 금감원은 다음 달까지 추가로 등록 신청을 받아 심사를 진행한 뒤 감사인을 지정해 10월 중 기업에 사전통지할 계획이다.
내년부터 시행되는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는 기업이 감사인을 6년간 자율적으로 선임하면 이후 3년간은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가 감사인을 지정하는 제도다. 기업과 회계법인의 유착을 막기 위해 지난 2017년 10월부터 국회에서 통과된 신외감법을 통해 도입됐다. 원래대로라면 내년 감사인 지정 대상이 477개사지만, 금융당국이 도입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규모가 큰 220개사만 우선 감사인 지정을 하기로 함에 따라 내년엔 자산 1,900억원 이상인 기업만 감사인이 지정된다.
감사인 지정이 네달이나 남은 상황이지만, 기업과 회계법인은 벌써부터 우려의 뜻을 나타내고 있다.
우선, 감사의 전문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오랫동안 감사를 맡아 왔던 회계법인 대신 당국이 임의로 지정하는 회계법인이 갑자기 감사를 맡게 되면서 기업의 내용을 잘 모른 채 감사의견을 낼 수 있다는 얘기다. 한 대형회계법인 파트너는 “해외에서는 감사인 교체 기간을 6개월 이상을 잡는다”며 “기업은 물론 회계법인들조차 준비가 제대로 안 된 상황에서 짧게는 6년, 길게는 수십 년간 감사를 해온 회계법인 대신 지정 감사인이 감사를 하게 될 경우, 제대로 감사를 하지 못한 채 적정 의견을 주거나(감사실패) 비적정 의견을 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둘째로 감사 보수 비용이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기업들은 감사인을 지정받는 경우 자율 선임에 비해 기업의 감사보수 협상력이 떨어져 비용이 늘 것이라며 걱정하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감사인 지정 기업은 자유 선임한 기업과 비교해 감사보수가 2.5배 늘었다.
또 해외 자회사 감사 문제로 일대 혼란이 빚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내년 지정 대상이 된 기업들이 주로 다수의 해외 자회사를 보유한 대기업들이다. 주기적 지정제에 따르면 자산 규모 5조원 이상 기업의 감사는 회계사 600명 이상을 갖춘 ‘빅4’ 회계법인만 가능하다. 문제는 빅4가 제휴를 맺고 있는글로벌 회계펌들이 본사의 감사의견을 내기 위해서는 자회사의 50~70%의 감사를 진행해야 하는 자체 가이드라인을 갖고 있다. 이에 따라 내년 주기적 지정제 대상 기업은 당장 해외 자회사의 감사인도 대거 교체해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모든 자회사의 회계법인을 바꾸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올해 주기적 지정제 대상 중 가장 규모가 큰 삼성전자의 경우 해외 종속회사만 227개에 이른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 관계자는 “분·반기 검토 시작하는 내년 4월까지 6개월 넘게 시간을 부여했다”며 “이 부분에 대한 기업이 불편이 정말로 크다면 내년부터 지정 일정을 앞당기는 것을 검토할 수는 있지만, 올해는 법 시행이 11월 1일로 정해져서 일정 변경이 어렵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감사인 지정 결과에 따른 회계법인의 대대적인 인력 유출입도 예상된다. 규모가 큰 대기업이나 감사가 까다로운 금융회사의 감사인이 바뀌면 새 감사인은 감사품질을 높이기 위해 기존에 감사를 맡았던 기업의 인력을 영입하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일부 실무진의 이동은 있겠지만, 그 비율이 높지는 않을 것”이라며 “일부 인력이 그대로 감사를 맡는다고 해도 담당 파트너(임원)과 감사인이 바뀐다는 점에서 독립성을 높이는 효과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양사록기자 saro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