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급 공무원의 삶과 애환
어려운 시험을 통과한 9급 공무원의 미래는 첫 선택을 어느 곳으로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공무원은 크게 국가공무원법과 지방공무원법에 따라 국가직과 지방직으로 분류된다. 국가직 공무원의 경우 임관하면 대체로 국가 정책을 기획하는 설계자의 길을 걷게 된다. 지방직 공무원들은 국가직 공무원들이 만든 정책을 현장에서 직접 시행하는 실무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국가직과 지방직 간 이동은 특채가 뜨거나 조직 간 이해관계 및 정원 등이 맞아떨어져야 하는 등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쉬운 일이 아니다. 지방직으로 근무하던 9급 공무원 김모씨는 동료들의 눈을 피해 국가직 특채에 지원, 첩보작전을 방불케 하는 노력 끝에 부서 이동에 성공했다.
국가직이든 지방직이든 9급 공무원들의 삶이 항상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매일같이 민원인들과 전쟁 같은 하루를 보내는 것은 기본이고 업무 분담이 제대로 되지 않아 고충을 겪는 일도 허다하다. 지방에서 근무하는 이모(32)씨는 마을 도로 확장공사를 하다 동네 주민에게 농작물 피해를 봤다는 항의를 받았다. 이씨는 “공사 현장과 멀리 떨어져 있어 농작물 피해와의 연관성은 없었지만 항의하는 민원인들의 목소리를 무시할 수도 없다”고 하소연했다.
9급 공무원이 고위 공무원도 아닌 중견 리더인 5급 공무원이 되기까지도 강산이 두 번은 바뀌어야 할 만큼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다.
9급에서 5급까지 승진에 걸리는 법령상 최단기간은 9년으로 되어있지만, 현실에서 이렇게 빠르게 승진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정이 녹록지 않다 보니 대부분의 9급 공무원들은 승진보다는 삶의 안정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부산 지역의 한 구청에서 근무하는 박모씨는 “고위직으로 갈수록 윗사람에 대한 사회생활도 더 열심히 해야 하는 것 같고 승진에 목매는 선배들이 아등바등 사는 것을 보면 별로 행복해 보이지도 않는다”며 “6급 정도 올라가서 내 삶을 즐기며 사는 게 더 낫다”고 말했다.
기초과학 등 분야서도 인재 필요한데 공시로 쏠려
저성장·100세 시대…‘가늘고 길게가자’ 기조 만연
전문성 부족에 2022년부턴 전문과목 시험 필수화
9급 공무원의 최대 장점은 역시 일과 가정이 병립할 수 있는 ‘워라밸’에 있다. 책임 요소가 많은 고위직 공무원에 비해 9급 공무원의 퇴근 시간은 칼 같다. 천재지변이나 특수한 경우 야근과 추가근무를 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1일 평균 근무시간은 9~7시간 정도로 알려졌다. 연중 휴가도 군필자 기준으로 최소 12일에서 최대 21일까지 가능하고 남성과 여성공무원 모두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제도도 비교적 잘 활용하는 편이다. 말 그대로 정당한 권리를 사용하면서 눈치를 봐야 하는 사기업에 비해 서러움이 덜하다. 다만 9급 공무원은 소방공무원부터 경찰공무원 등 그 범위가 방대하기 때문에 주 50시간 이상, 사기업 못지않게 일하는 불운한 이들도 적지 않다. 천안의 한 구청에서 일하는 9급 공무원 박모씨는 “일이 고되고 힘들다가도 사기업에 다니는 친구들이 휴가도 없이 매일 야근하는 것을 볼 때마다 나쁘지 않은 직장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정시 퇴근할 수 있고 휴가도 맘 편히 쓸 수 있는 게 최고인 것 같다”고 웃었다.
9급 공무원의 빛이 워라밸이라면 낮은 연봉은 그림자라고 할 수 있다. 2019년 9급 공무원 연봉은 1호봉의 경우 기본급이 159만2,400원이다. 여기에 상여수당·가계보전수당·특수근무지수당·초과근무수당·실비변수수당 등 각종 수당이 합쳐진다. 남자 군필자는 3호봉에서 시작하는 등 직무와 처한 상황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연봉도 천차만별이다. 9급 공무원 임용 첫해 연봉은 2,000만원 초반대인 것으로 알려졌다. 예를 들어 일반직 9급 초임 1호봉을 기준으로 보면 기본급 144만9,000원에 정액급식비 13만원, 명절휴가비 14만5,000원, 연가보상비 3만5,000원 등 각종 수당이 합쳐진다. 세전 월 보수는 196만7,000원으로 연봉은 2,300만원 정도다. 다만 공무원은 근속기간이 길고 호봉이 자동으로 올라 호봉별 정근수당(2년 이상부터 지급)과 정근수당가산금·가족수당·자녀수당·성과상여금이 추가되는 등 시간이 흐를수록 나쁘지 않은 연봉을 받게 된다. 5급 이상의 중견관리자로 승진하면 호봉제가 아닌 성과연봉제로 전환된다.
저성장 시대와 100세 시대를 맞아 가늘고 오래 살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9급 공무원에 대한 인기가 하늘을 찌르며 우수한 인재도 많이 유입되고 있다. 이에 따라 9급 공무원을 바라보는 사회의 눈높이도 높아졌다. 바야흐로 9급 공무원 사회에도 프로페셔널리즘(전문성)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인사처는 모든 행정직군 시험 선택과목에서 사회·과학·수학 등 고교과목을 제외하고 직렬별 전문과목을 필수화하는 내용을 담은 공무원임용시험령 개정안을 6월26일 입법예고했다.
정부는 2년의 유예기간을 두고 오는 2022년부터 고교과목을 폐지한다. 이에 따라 세무직 공무원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세법개론과 회계학을 준비해야 하고 검찰에서 일하고 싶은 사람은 형법과 형사소송법 등 전문과목을 공부해야 한다. 인사처의 한 관계자는 “현장에서 공무원의 전문성 부족으로 인한 여러 폐해가 보고됐다”며 “심지어 기소라는 용어를 알지 못해 그걸 찾아보는 사례도 있었다. 전문지식이 단기간 보완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업무 회피와 이직자가 많아지는 등 국민들에게 끼치는 피해가 컸다”고 말했다./박우인기자 wipar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