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일 일본의 경제 보복에 맞선 ‘극일(克日)’의 해법으로 남북 경제협력을 통한 평화 경제를 제시했습니다. 일본 정부가 미국의 중재까지 거부하고 우리나라를 ‘백색 국가(화이트리스트·전략물자 수출심사 우대국가)’ 명단에서 제외한 지 사흘 만에 나온 발언이었습니다.
문 대통령은 “이번 일(경제 보복)을 겪으며 우리는 평화 경제의 절실함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며 “평화 경제야 말로 세계 어느 나라도 가질 수 없는 우리만의 미래라는 확신을 가지고 남과 북이 함께 노력해 나갈 때 비핵화와 함께하는 한반도의 평화와 그 토대 위에 공동번영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습니다.
당장 벌어지고 있는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한 대응책 마련에 분주한 이때 남북 경협과 평화 경제를 거론하는 것이 적절한지는 둘째 문제로 미뤄둘 수도 있습니다. 지금처럼 북한이 하루가 멀다 하고 미사일 발사 도발을 이어가고(북한은 문 대통령의 이 발언이 전해진 다음날 새벽 또 동해 상으로 미상의 단거리 발사체를 2회 발사했습니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도 풀릴 기미가 없는 상황에서는 가장 기초적인 단계의 경협마저 불가능하다는 사실도 일단 제쳐놓겠습니다. ‘남북 경협이 실현되면 단숨에 일본 경제를 따라잡을 수 있다’는 것은 경제적으로 현실성이 충분한 해법일까요.
아주 단순한 사실만 먼저 짚어보겠습니다. 경제 규모는 국가별 국내총생산(GDP)으로 비교해볼 수 있는데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일본의 연간 GDP는 4조9,700억달러, 우리나라는 1조6,200억달러였습니다. 북한은 공식 데이터가 없지만 한국은행은 293억달러 정도로 추정한 바 있습니다. 내수시장의 가장 큰 결정 요인인 인구도 일본은 1억2,690만명가량 됩니다. 우리나라는 5,170만명, 북한은 2,570만명(추정)입니다. 남북 경제가 단순히 합쳐진다고 해서 일본 경제와의 격차를 줄이기는 쉽지 않습니다.
물론 이런 단순한 합산만으로 경제협력의 효과를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경제의 관건인 생산성과 기술력 등도 고려해야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남북 경제협력만으로 우리 경제에 극적인 성장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분석합니다. 사회적 갈등을 포함한 여러 가지 비용으로 오히려 순편익이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자료=김병연 서울대 교수
◇“남북경협 韓 경제성장 효과 +0.1%P…‘마이너스’ 가능성도”
지난 2월 경제학 공동학술대회에서 북한경제 분야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김병연 서울대 교수는 남북 간 경제협력이 실현될 경우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0.1%포인트 더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김 교수는 “개성공단과 같은 특구가 10개 생긴다고 해도 남한의 국민총소득(GNI)을 0.1~0.5%포인트 증가시키는 정도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며 “무역 효과를 더한다고 해도 최대 1%포인트가량 증가시키는 데 그칠 것으로 추정한다”고 분석했습니다. “남북한의 경제 규모가 너무 차이가 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철도·도로·항만 등 인프라 건설 비용, 공단 조성 비용, 사회적 갈등 비용 등을 고려하면 순익은 마이너스가 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인프라 건설 비용의 상당 부분이 납세자의 부담”이라며 “낮은 단계의 경협만으로는 ‘대박’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경협보다 더 나아가서 ‘평화 경제’에 더 가까운 단계의 경제통합이라면 가능할까요. 경제통합이 되려면 북한이 개혁·개방을 하거나 자본주의로 이행하는 체제 전환이 수반돼야 합니다. 단순한 협력이 아니라 남북 간 자본·노동 등이 통합 수준에 이르러야 한다는 것이죠.
현실성은 일단 제쳐놓더라도 이 경우에도 김 교수가 추정한 추가 성장 효과는 최대 연 0.5%포인트에 그칩니다. 물론 북한의 성장 효과(연평균 3%포인트)가 크기 때문에 규모 면에서는 일본과의 격차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일본 경제의 가장 큰 비교우위인 고급 기술력과 큰 내수시장을 ‘단숨에’ 따라잡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물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중국의 덩샤오핑처럼 개혁·개방 노선을 택할 수 있을 것인지부터가 관건입니다. 김 교수는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이끌기 위한 경협을 추진해야 한다”며 “그냥 무조건 ‘경협하자’고만 할 것이 아니라 정책을 하시는 분들은 전망과 관점이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지난해 12월 북측 판문역에서 열리는 남북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사업 착공식 참석자 등을 실은 열차가 판문역에 도착, 기다리고 있던 북측 열차와 나란히 서 있다./사진공동취재단
◇“韓 이미 자본집약적 경제…오히려 노동시장 부정적 영향 가능성”
박지형 서울대 교수는 같은 학술대회에서 북한 경제가 개방되더라도 무역을 통해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은 매우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박 교수는 “이미 자본집약적 중간재에 특화한 한국 경제의 특성상 북한 경제가 개방되더라도 한국의 자본수익률이나 자본축적 동기에는 거의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며 “소비 수준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겠지만 성장에는 거의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노동시장, 특히 비숙련 노동은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내놨습니다. 박 교수는 “만약 개성공단처럼 한국의 직접투자 확대가 동반된다면 자본축적 동기를 강화할 수 있지만 이 자본은 북한 경제로 이동한다”며 “중국 경제 개방 당시 미국 노동시장에 나타난 사례에 견줘보면 북한의 경제 개방이 한국 제조업·서비스업 근로자의 임금·소득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5일 오후 청와대에서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 대통령은 지난 2일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한 직후 열린 국무회의에서는 기술 자립과 국산화, 수입처 다변화 조치를 강조했습니다. 정부도 일본 수출 규제에 대한 직접적 대응책으로 부품·소재·장비 국산화를 위한 방안을 내놓은 상태입니다. 문 대통령의 ‘평화 경제’ 발언은 지나친 비관론이나 불안 심리는 경계하자는 차원에서 나온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정부의 부품·소재·장비 국산화 대책마저 당장 발등의 급한 불을 끄기에는 부족하다는 우려가 나오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남북 경협을 탈출구로 제시하는 것은 국민의 눈높이와는 맞지 않을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이 연일 이어지고 있는 현실과도 동떨어져 있습니다. 한 증권사의 외환 전문가는 “금융시장이 극도로 요동칠 때에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메시지가 필요한데 그런 상황에서 나올 만한 것으로 기대하기 어려운 발언”이라고 꼬집었습니다.
경제학적인 분석으로는 남북경협이 만능 해법만은 아니라는 증거가 나와 있습니다. 물론 전통적인 분석으로는 추정할 수 없는 편익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경제 효과에 대한 갑론을박을 떠나, 위기 국면에서 국가가 나아갈 길을 제시해야 할 정부가 희망 섞인 낙관론을 대통령의 공식 발언으로 내놨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세종=빈난새기자 binther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