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꽂이 - 미국, 새로운 동아시아 질서를 꿈꾸는가]팍스 아메리카나 체제하 미중일 패권전쟁 70년 역사

■리처드 맥그레거 지음, 메디치 펴냄
習-아베 부상과 中日 역사분쟁 속
키플레이어 자처 美 노선변화 다뤄
美中 수교후 日은 中과 관계모색 둥
70년간 미중일 협력·갈등의 연속
2차대전 비극 인정한 유럽과 달리
동아시아는 과거사 갈등에 혼란 지속
지금의 '美日 밀월'도 오래 못갈 것


미·중 무역전쟁은 잠잠해지나 싶다가도 수시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을 불안감에 떨게 하고 있다. 양국간 충돌은 경제 전쟁의 외피를 둘러쓰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2차대전 이후 미국의 동아시아 질서에 중국이 도전하면서 벌어지는 주요2개국(G2)간 패권 전쟁이다. 신흥 강대국이 급부상하면서 기존 강대국과 갈등을 일으키며 필연적으로 양국간 충돌로 이어진다는 이른바 ‘투키디데스의 함정’의 재현이다.

이뿐만 아니라 한국과 미국, 중국, 일본간의 상호 관계도 하나의 노선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급변하고 있다. 또 동아시아에서 ‘팍스 아메리카나(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평화)’ 질서에 금이 간 가운데 홍콩의 송환법 반대 시위, 일본의 우경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 등 역내 정세가 불안정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신간 ‘미국, 새로운 동아시아 질서를 꿈꾸는가’는 동아시아 패권 전쟁을 미국의 외교 노선 변화와 미·중·일 3국간 역학관계 이동에 맞춰 분석한 책이다. 저자는 호주 출신 언론인인 리처드 맥그레거로, 오랜 시간 베이징·상하이 등에서 특파원으로 근무한 아시아 전문가이다. 지금은 파이낸셜타임스(FT) 워싱턴지국장이다. 그는 그동안 맺어온 정보원들과 인터뷰, 그동안 공개하지 않았던 미·중·일의 정부 문건 등 방대한 자료를 통해 객관성을 확보했다. 저자는 중·일간 역사 분쟁과 영토 충돌, 시진핑 중국 주석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부상, 한중일간 역사 문제 등의 근본 뿌리를 파고든다. 특히 동아시아 패권의 ‘키플레이어’인 미국이 팍스 아메리카나를 유지하기 위해 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를 어떻게 다뤄왔는지를 장대하게 펼쳐 보인다.


저자는 이들 3국간의 관계를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 ‘저수지의 개들’에 나오는 강도들에 비유한다. 이 영화에는 강도단이 다이아몬드 도매상을 털려는 계획이 유출되자 서로 의심해 총을 겨누고 대치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들 3국은 2차대전 이후 동아시에서 지난 70년 동안 시기에 따라 서로 협력과 견제, 갈등을 반복해 왔고 이 같은 복잡하고 미묘한 관계가 최근 혼란의 근본 배경이라는 것이다.

가령 종전 이후 미국 입장에서 전쟁을 치른 일본은 견제의 대상이었다. 다만 미국은 일본을 방어선으로 내세워 구 소련의 남진을 저지하고 동아시아 패권을 유지하려 했다. 1971년 중국을 처음 방문한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이 저우언라이 중국 총리에게 미군의 동아시아 주둔 목적은 일본 억제용이라고 설명했을 정도다.

1972년 미국과 중국이 수교를 맺어 세계를 놀라게 하자 일본도 중국과 새로운 관계를 모색했다. 당시 일본은 과거사 문제를 적극 사과하려 한 반면 상대적으로 국력이 약했던 중국은 일본으로부터 경제 원조를 이끌어내는데 집중했다. 하지만 중국이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면서 과거사 문제가 발목을 잡았고 양국 갈등은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된다. 중국은 기회가 될 때마다 난징대학살 등 전쟁피해에 대한 공식 사과를 요구하고 있고 일본은 과거사를 부정하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오히려 피해자 코스프레로 일관하고 있다. 또 저자는 현재의 동아시아 정세를 이해하기 위해 각국 지도자들의 면면도 들여다 본다. 예를 들어 아베 총리의 역사수정주의와 반중·친미 정책은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의 영향을 받았다.

그렇다면 앞으로 동아시아 정세는 어떻게 전개될까. 저자는 상당기간 불안정한 국면과 불확실성이 지속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유럽 국가들은 제2차 세계대전의 비극을 인정함으로써 전후 폐허를 딛고 단결할 수 있었다”며 “반면 동아시아에서는 전쟁과 과거사 갈등이 정치, 외교, 정서 어느 면에서도 해결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이후 고립주의 성향을 보이고 있는 미국의 입장은 어떨까. 저자는 “미국이 아시아를 조용히 빠져나갈 가능성은 희박하다”며 “중국 중심으로 재편된 아시아 질서가 위험한 이유는 미국의 선택과 상관없이 중국이 기존의 역내 질서를 영원히 뒤바꿀 수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저자는 지금은 중국이 미국과 일본을 위협하고 일본은 미국과 밀착하고 있지만 미·일간 밀월이 영원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책은 미·중·일 중심의 패권구도가 형성된 과정을 서술해 지금 우리가 어떤 체제 위에 놓여있는지 깨닫게 해주는 게 강점이다. 다만 한국에 대해서는 깊이 있게 다루지 않는 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또 한국을 동아시아 지정학적 구도의 주요 변수로 보지도 않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인 문정인 연세대 특임명예교수는 해제에서 “불행하게도 역사의 인질로 잡혀있는 동아시아가 반목과 대립을 극복하고 평화의 길로 가는 길은 요원해 보인다”며 “일본이 전후 미국이 강요한 ‘승자의 정의’에 불만을 제기하고 히로시마를 상기시키면서 ‘피해자 국가’로 변신하려고 시도하는 한 아시아의 평화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2만9,000원. /연승기자 yeonvic@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