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가운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일본 수출규제 대응 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한국에 대한 일본의 수출규제는 글로벌 가치사슬에 타격을 줘 한국뿐 아니라 신남방 국가들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제공=기획재정부
7월4일 일본은 한국으로 수출하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레지스트, 에칭가스 등 반도체·디스플레이 관련 3개 소재에 대한 수출규제(리스트 규제) 강화조치를 단행했다. 이로써 이날부터 한국에 해당 품목을 수출하는 일본 기업은 수출 1건당 심사 및 허가를 받아야 하고 허가에도 최대 90일 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달 28일에는 전략물자수출관리제도 운영상 한국을 ‘화이트 국가’ 리스트에서 배제(catch-all·캐치올)했다. 캐치올은 리스트 규제보다 포괄적이고 자의적인 수출규제가 가능하다. 현재 군사전용이 가능한 첨단소재와 전자부품 등의 품목이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일본의 대한(對韓) 수출규제에 따른 영향은 아직 심각할 정도로 가시화되고 있지 않다. 반도체·디스플레이 관련 3개 소재의 재고가 남아 있고, 일본 수출규제가 전면적으로 시행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7월 이후 일본 정부는 3개 소재 중 레지스트의 한국 수출을 두 차례 허가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지난달 일본의 대한국 초고순도불화수소(에칭가스) 수출량은 ‘제로(0)’다. 일본 수출규제가 장기화하거나 본격화할 경우 대일 부품 및 소재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는 큰 타격이 우려된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레지스트, 에칭가스의 경우 한국 전체 수입 중 일본 수입 비중이 올해 1~5월 각각 93.7%, 91.9%, 43.9%에 달하고 한국의 대일 무역수지적자에서 부품·소재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도 60% 정도에 이르기 때문이다.
일본의 수출규제로 한국 전자부품 및 장비의 생산과 수출이 감소하면 단순히 한국 경제에 대한 타격에만 그치지 않는다. 한국과의 생산 네트위크 및 가치사슬이 밀접한 신남방 지역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는 리스트 규제의 주타깃이 된 한국의 반도체 수출 통계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한국의 전체 반도체 수출 중 신남방 지역 비중은 올 상반기 기준 14.4%로 중국(47.3%), 홍콩(31.7%) 다음으로 크다. 지역별로는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과 인도 비중이 각각 12.8%, 1.6%를 차지한다. 아세안 국가 중에서는 베트남(7.6%), 필리핀(4.1%)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다.
한국 반도체 수입현황을 보면 신남방 지역의 타격은 더욱 명확해 보인다. 아세안 주요국별 전체 반도체 수입 중 한국산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서 64.2%, 50.5%로 가장 높은 수준이며, 필리핀도 세 번째로 높은 11.3%에 달한다. 인도의 경우 전체 반도체 수입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홍콩(61.9%), 중국(17.6%) 다음으로 높은 15.0%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의 대한 수출규제로 한국의 반도체 생산이 감소할 경우 베트남·필리핀·인도네시아·인도 등 신남방 지역 주요 국가들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이 우려된다.
명목적인 수출입통계가 아닌 부가가치 기여분 기준으로 봐도 유사한 모습이 나타난다. 국제산업연관표를 이용해 한국 전자부품 및 장비가 신남방 지역 전자부품 및 장비 최종 생산에 미치는 부가가치 기여분을 분석한 결과 베트남·인도·인도네시아·필리핀·싱가포르 등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즉 이들 나라에 상대적으로 타격이 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아세안 주요 국가들도 일본의 대한 수출규제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특히 한국 전자제품 및 반도체 수출과 밀접한 베트남의 우려가 크다. 베트남 정부와 연구기관을 중심으로 일본이 원료부품소재 수출을 규제할 경우 전 세계 가치사슬에 영향을 주며, 특히 한국 기업의 전자제품·휴대폰 생산기지 역할을 하는 베트남 경제에 생산 및 수출 측면에서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음을 지적한다. 태국·말레이시아 등도 일본의 수출규제가 추후 전자제품의 글로벌 공급망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문제 해결을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국내적으로는 대일 의존도가 높은 부품 및 소재 부문의 국내 생산, 대체공급망 확보 대책 등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에 대해서는 수출규제 조치 철회를 목표로 한일 정부 간 협의와 대화를 통한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고, 동시에 국제사회에 일본의 대한 수출규제의 부당함을 알리고 자유무역주의를 지키기 위한 공조를 강화하고 있다.
신남방 지역에서도 이러한 노력을 강화해나가야 한다. 신남방 지역이 참가하는 양자 및 다자회의를 통해 일본의 대한 수출규제가 부당하다는 점을 알리는 동시에 글로벌 무역규범과 글로벌 가치사슬(GVC)을 심각하게 훼손하거나 피해를 줘 아세안과 인도 등 신남방 지역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또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가 아세안에서 주도하는 역내 무역자유화와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할 수 있음을 아세안 및 RCEP 회원국에 전달해야 한다.
나아가 자유무역주의를 지키기 위해 아시아 중견국 및 신흥국과의 연대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11월 한국에서 개최되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한·메콩 정상회의 등에서 자유무역주의를 지키고 강화하기 위해 아시아 중견국 및 신흥국과의 연대 강화를 정식 의제로 추진하는 것을 검토해볼 만하다.
신남방- 정영식 대외경제정책硏 신남방정책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