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파구 세모녀 사건' 데자뷔, 5년 지나도 ‘사각지대’ 여전

성북구 네 모녀 생활고에 극단적 선택
공과금 3개월 체납 사실 없어 방문 안해
'찾아가는 서비스'도 70세 넘어 해당 없어
이웃주민 "안타깝다"고만...제보 활성화해야

70대 노모와 40대 딸 3명명이 숨진 채 발견된 서울 성북구의 한 다세대 주택 출입문에 3일 폴리스 라인이 설치돼 있다. /연합뉴스

사망한 뒤 한 달이 지나서야 발견된 ‘성북구 네 모녀 사건’에 대해 구청이 이들의 생활고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사건으로 정부·지방자치단체가 마련한 위기가정 복지정책 곳곳에 ‘구멍’이 있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2014년 ‘송파구 세 모녀’ 사건 5년이 지난 지금도 사회안전망 보완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4일 서울 성북구청에 따르면 지난 2일 숨진 채 발견된 정모(76)씨와 40대 딸 셋은 공과금이 지난 3년 이상 체납된 사실이 없어 구청이 방문 상담을 한 적이 없다. 3개월 이상 공과금이 체납되면 구청은 체납자를 방문하도록 돼 있다. 경찰 조사 결과 정씨의 가족은 월세가 2~3개월 밀린 상황이었지만, 이 역시 집주인이 주민센터에 신고하지 않는 이상 지자체에서 나설 방도가 없다.

네 모녀는 2015년부터 서울시가 진행하는 ‘찾아가는 동주민센터(찾동)’ 제도에도 해당되지 않았다. ‘찾동’은 매년 65세 또는 70세가 되는 주민 등을 복지상담사와 간호사가 집을 방문하는 제도인데, 정씨는 이미 제도가 시작된 때 70세가 넘었다는 것이다. 성북구청은 “인력 부족 등 현실적 조건 때문에 70세 이상 주민은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또 구청은 정씨처럼 기초연금만 수령 받는 65세 이상 저소득층 노인을 일일이 확인하고 방문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보건복지부와 지자체는 유사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대책을 마련하고 관련 제도를 정비하고 있다. 복지부는 ‘탈북자 모자 아사 사건’을 계기로 지난 9월 사회복지 및 간호직 공무원을 1만5,500명 충원해 각 주민센터에 배치하고, 각 지자체가 위기가구 발굴 및 실태조사를 의무화·정례화하도록 하는 등 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또 사회안전망에 ‘구멍’이 드러난 셈이다.

김범중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정작 복지 사각지대를 발굴하러 다녀야 하는 9급 사회복지사들은 지금도 시간과 급여에 비해 할 일이 너무 많다”며 “‘찾동’도 인력이 부족하고 처우가 열악해서 효과가 떨어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김 교수는 “이번 정부 예산 증액을 통해 복지사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웃주민들의 관심과 제보가 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각 구청은 ‘찾동’ 제도 등으로 만나지 못하는 위기가구는 ‘주민 제보’를 받고 찾아가도록 하고 있다. 정씨의 가족과 같은 건물에 사는 한 이웃은 “모녀를 종종 봤는데 얼굴도 창백하고 좀 의기소침해 보였다”고 안타까워했다. 모녀의 집 우편함에는 카드·신용정보 회사로부터 발송된 우편물이 쌓여있었다. 하지만 성북구청에 따르면 정씨의 가족에 대한 주민제보는 한 건도 없었다.
/손구민·이희조기자 kmsoh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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