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소프트뱅크의 ‘비전펀드’가 투자한 스타트업들이 줄줄이 위기에 빠지면서 수십억달러에 이르는 대규모 투자 손실이 예상되는 가운데 비전펀드가 6일 2·4분기(7~9월) 실적 발표와 함께 새로운 투자 가이드라인을 내놓는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감’에 따라 리스크를 과감히 떠안으면서 신속하게 투자 결정을 내린 것이 패착이었다는 비판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새로운 투자 전략을 내세우며 위기돌파에 나선 것이다.
5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소프트뱅크는 투자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 창업자의 차등의결권 주식 보유 제한 등의 내용을 담은 새로운 투자 가이드라인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세계 최대 1,000억달러 규모의 비전펀드가 비상장 기업에 투자할 경우 최소한 이사회에서 1석 이상, 독립이사도 1명 이상을 확보해야 한다. 새 가이드라인은 이사들의 차등의결권 주식 보유를 금지하고 창업자나 경영진이 이사회에서 과반을 차지하지 못하도록 했다. 창업주가 기업공개(IPO)나 또 다른 형태로 보유지분을 매각할 때는 일정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소프트뱅크가 투자 기업의 지배구조를 강조하고 나선 것은 비전펀드가 투자한 스타트업들이 방만한 경영으로 사업에 실패한 사례가 속출하고 있어서다. 투자 기업들이 필요한 것 이상으로 자금을 지원하는가 하면 차등의결권 주식 등 창업자에게 권한을 지나치게 부여하고 이들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해주는 전략이 방만한 경영을 조장했다는 것이다. 이는 손 회장의 과감한 투자 방식과도 닿아 있다. 손 회장은 수많은 정보기술(IT) 스타트업들을 놓고 자신의 직관에 따라 될성부른 기업을 빠르게 골라내 거액의 현금 뭉치를 안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를 놓고 미국 언론들은 ‘위험 중독(risk-addicted)’, ‘도박(gamble)’, ‘베팅(bet)’ 등 부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실제로 비전펀드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거액을 투자했던 기업들이 되레 ‘돈 먹는 하마’로 전락한 경우가 잇따르고 있다. 우버의 경우 지난 5월 상장 이후 주가가 연일 공모가(45달러)를 밑돌고 있으며 3·4분기(7~9월) 순손실 11억6,000만달러(약 1조3,500억원)를 기록했다. 사무실 공유 업체인 위워크는 창업자 애덤 뉴먼의 방만한 경영으로 실적이 악화하면서 결국 연내 IPO 계획을 철회했다. 소프트뱅크는 그동안 위워크에 투자한 금액보다 더 많은 95억달러를 추가 투입하기로 하면서 위워크를 떠안았다. 이 과정에서 뉴먼 CEO는 17억달러를 챙겨 비난을 받기도 했다.
비전펀드의 투자 실패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위워크가 비전펀드의 유일한 골칫거리는 아니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비전펀드가 자금을 댄 반려견 산책 스타트업 ‘왜그’, 실내 농장 ‘플렌티’, 자동차 렌털 업체 ‘페어’ 등도 고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비전펀드는 이들 업체가 투자금으로 경쟁업체를 제압하기를 기대했지만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고 WSJ는 지적했다. 비전펀드가 100억달러 이상 투자한 중국의 차량 호출 업체 ‘디디추싱’ 역시 더 많은 현금 지원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27억달러를 투입한 한국의 쿠팡은 지난해 매출보다 영업손실이 더 빠르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FT는 “우버 등 비전펀드가 투자한 대표 기업들의 저조한 성적표는 손 회장의 신속한 의사결정과 유망 IT 기업들을 골라내는 능력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왔다”면서 “비전펀드의 새로운 투자 가이드라인은 손 회장의 투자 전략 변화를 시사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노희영기자 nevermind@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