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총리의 선거 흑역사…8명 중 절반은 낙선

장관만 4번 진념, 경기지사 낙선
홍재형·강봉균도 첫도전 실패 후 3선



2002년에는 6월 지방선거와 12월 대선이 치러졌다. 지방선거 1개월을 앞둔 5월 수원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새천년민주당 6·13 지방선거 필승 결의대회에서 노무현 민주당 대선 후보가 진념 경기지사 후보의 대형 사진 아래에서 진 후보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제부총리의 선거 인연은 꽤 깊다. 경제기획원과 재무부가 합쳐진 1994년 12월 홍재형 초대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장 이후 경제사령탑은 22명이다. 이 중 11명이 국회의원과 연관이 있다. 국회의원을 하다가 부총리가 된 사람도 있고 퇴임 이후 선출직에 도전한 경우도 있다. 이런 전력은 홍남기 현 경제부총리의 총선 차출설이 끊이지 않는 배경 중 하나로 꼽힌다.

결과는 어떨까. 전국적 지명도를 갖췄지만 현실정치의 벽은 높았다. 출마자 8명 가운데 절반만 뜻을 이뤘다. 전현직 의원 출신을 제외한 정치 신인으로 좁히면 5명 가운데 3명이 고배를 마셨다.


홍재형 부총리는 1996년 15대 총선에서 집권 신한국당 후보로 충북 청주에 출마했으나 고배를 마셨다. 충청권의 맹주인 김종필(JP) 총재가 이끈 자유민주연합의 벽을 넘지 못한 것이다. 그는 초선 도전에 실패한 후 16·17·18대 의원을 지냈다. 홍 부총리의 바통을 이어받은 나웅배·한승수·강경식 부총리는 전현직 의원 신분이었다. 4선 의원인 나웅배 부총리는 공직을 끝으로 정치를 접은 반면 한승수 부총리는 2000년 16대 총선에서 승리해 3선의 관록을 쌓았다. 하지만 강경식 부총리는 외환위기 초래 논란에 16대 총선(무소속)에서 국회의원 배지를 달지 못했다.

김영삼(YS) 정부 마지막 경제수장인 임창열 부총리는 김대중(DJ) 집권 1년 차에 치러진 2회 지방선거에서 여당 소속으로 경기지사로 출마해 당선됐다. 당시 김대중·김종필(DJP) 연립정부는 수도권 광역단체장 3곳을 싹쓸이했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DJP 연합에 균열이 가면서 패배가 잇달았다.

강봉균 재정경제부 장관은 16대 총선 당시 분당에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강 전 장관은 자신의 이름 석 자조차 모르는 유권자가 태반인 것을 알고 적이 당황했다는 일화는 관가에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2002년 재보궐선거에서 고향인 전북 군산에서 금배지를 단 후 3선 의원을 지냈다. 동력자원부·노동부·기획예산처·재정경제부 장관을 맡아 ‘직업이 장관’이라는 진념 부총리는 여당의 거센 압박 끝에 2002년 경기지사에 도전했으나 쓴잔을 마셨다. 이후 그는 정치권과 담을 쌓았다.

경제수장의 선거 흑역사는 참여정부 초대 김진표 부총리의 17대 국회 입성으로 깨졌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경제부총리의 선거 차출은 없었지만 전현직 의원(박재완· 최경환·유일호)이 기용됐다. /권구찬 선임기자 chan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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