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내 민생법안 처리 불투명…국정 난맥 부르나

[선거법 개정 진통]
예산부수법안 통과 불발땐
취약층 지원 뚝…기업들 혼란

‘공직선거법 개정안’ 본회의 투표를 앞두고 27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손팻말과 현수막을 펼치며 국회 의장석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연합뉴스

선거법·공수처법을 둘러싼 여야의 벼랑 끝 대치로 인해 각종 민생법안들의 연내 처리가 불투명해지고 있다. 국정의 일대 혼란이 예상된다. 한 해 세입을 주관하는 각종 예산부수법안들이 통과되지 않으면 이미 통과된 2020년도 예산안에도 수정이 불가피하다. 올해를 끝으로 지방세특례제한법·국민연금법 등이 일몰되면 신혼부부·농어민·사회복지법인 등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 협상으로 국가적 문제를 앞서 해결해야 할 국회가 오히려 사회적인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 셈이다.

27일 국회에 따르면 26건의 예산부수법안(차기 연도 예산안과 함께 국회에 제출돼 국회 심의를 받아야 하는 법안) 중 4건이 지난 10일 예산안과 함께 통과됐고, 23일 선거법과 같이 2건이 통과됐다. 이날 기준 여전히 20건의 예산부수법안이 국회에 묶여 있다.


대표적인 예산부수법안에는 ‘주세법’ ‘소재·부품 전문기업 육성 특별법’ ‘농업소득보전법’ 등이 있다. 주세법은 탁주와 맥주에 대한 세금 기준을 가격 기준(종가세)에서 양 기준(종량세)으로 바꾸는 내용이다. 종량세가 적용된다고 가정해 국산 맥주업체들은 선제적으로 가격을 낮췄지만, 주세법이 통과되지 않으면 맥주 업계에 혼선이 빚어진다. 소재부품 특별법에는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국내 소재·부품·장비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대책이 담겼다. 이 법이 처리되지 않으면 소재·부품·장비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특별회계 2조1,000억원 집행이 불가능하다. 공익형 쌀 직불금 제도 도입을 위한 부수법안인 농업소득보전법 역시 통과되지 않으면 관련 예산 2조4,000억원의 발이 묶인다.

입법 미비로 인해 취약계층 지원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올해 일몰 예정인 지방세특례제한법·국민연금법 등이 개정되지 않으면 신혼부부·농어민·사회복지법인을 지원할 근거가 마련되지 않기 때문이다. 기존 지방세특례제한법에는 사회복지 법인과 생애 최초 주택 구입 부부에게 총 2,138억원, 농업법인 등에 673억원의 세제 감면 혜택을 주는 내용을 포함됐으나 2020년도 지방세지출 계획이 담긴 새 지방세특례제한법은 계류하고 있다.

여야는 이처럼 국정 마비가 코앞에 닥친 상황에서도 네 탓 공방을 벌였다.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지난 26일 “자유한국당의 방해로 예산부수법안과 핵심민생법안이 처리되지 못했다”며 “한국당의 방해로 예산부수법안이 연내 통과되지 못하면 정부 재정과 정책의 정상적 운용이 차질을 빚는다”고 비판했다. 이에 심재철 한국당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민생을 위하는 정당이라면 선거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처리에 목매지 말고 시급한 민생법안부터 처리해야 한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도 원내대표 간 협상의 문은 과거 심 원내대표가 당선됐을 때보다 훨씬 닫혀 있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민주당이 야권 3+1(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대안신당)과 선거법·공수처법을 협상하며 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비당권파를 외면했고, 이에 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비당권파도 협상의 문을 걸어잠근 탓이다. 심 원내대표가 당선된 9일에 이어 그다음 날인 10일에도 3당 원내대표는 공식회담을 가졌지만 이후 13일 동안 공식적인 회담을 갖지 않았다. 12일과 16일에는 심 원내대표만, 13일에는 심 원내대표와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가 국회의장 주재 회동에 불참했다.
/김인엽기자 insid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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