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홍사 반도건설 회장/ 연합뉴스
한진그룹 경영권 분쟁에 뛰어든 반도건설의 존재감이 커지고 있다. 본업인 건설업만 보면 국내 13위 수준의 중견 건설사지만 막강한 현금동원능력과 오너 지배체제의 빠른 의사결정을 앞세워 한진 경영권 분쟁에서 사실상 ‘캐스팅보트’ 자리를 차지했다. 일각에서는 이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는다. 한진 경영권 분쟁을 계기로 대기업집단 그룹사로 도약할 수 있는 분기점에 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투자은행(IB) 업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27일 “반도건설로서는 하나의 카드로 여러 타깃을 동시에 노리는 그림”이라고 해석했다.
◇사업확장에서 계열분리까지…다목적 포석=반도건설의 속내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IB 업계에서는 경영권 승계와 계열분리까지 염두에 둔 다목적 포석이라는 분석이 많다.
반도그룹 지주사인 반도홀딩스 지분은 권홍사 회장과 장남인 권재현 반도개발 상무가 각각 69.61%, 30.06%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두 딸에 대한 승계구도까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이런 탓에 사업확장은 필연적 선택이다. 반도건설의 관계사인 퍼시픽산업이 최근 엔터테인먼트 회사인 키위미디어의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예상 인수금액은 150억원 수준이지만 건설사가 엔터 산업에 발을 담근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다. 퍼시픽산업은 권 회장의 맏사위인 신동철 반도건설 전무가 지난 2009년 권 회장으로부터 100% 지분을 물려받아 보유하고 있다. 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건설업은 성장 한계에 부딪혔고 승계까지 생각하면 적극적 인수합병(M&A) 외에 뾰족한 해법이 없다는 게 중견 건설사 오너들의 공통적인 판단”이라고 말했다. 호반건설·중흥건설 등도 M&A 시장에서 사업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한진은 항공·물류업이 기반이지만 서울 종로구 송현동 부지, 제주도 정석비행장·파라다이스호텔 등 유휴자산이 많다. 반도건설이 대한항공과 손잡고 이들 부지에 대한 개발에 나서면 공사 일감을 확보하는 것은 물론 호텔·레저사업 진출 기반을 닦을 수 있다. 반도건설의 ‘전략통’인 신 전무가 자연스럽게 신(新)사업 전반을 총괄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장남은 건설업을 맡고 장녀는 신사업을 맡는 식으로 자연스러운 교통정리가 이뤄지는 것이다.
◇막대한 현금보유…경영권 노릴 가능성도=단순한 전략적 제휴 관계를 넘어 한진그룹의 경영권을 노릴 가능성도 있다. 협력을 강화하는 노선으로 가면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손을 들어주고 경영권 획득으로 방향을 틀 경우에는 한진칼(180640)의 단일 최대주주인 KCGI(강성부펀드)와 깜짝 제휴할 수 있다는 게 시장의 판단이다.
이런 분석의 배경에는 반도건설의 막강한 현금동원능력이 있다. 2018년 말 연결 기준 반도홀딩스의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약 1,719억원이며 여기에 분양미수금(6,419억원)과 공사미수금(293억)까지 더하면 가용현금이 8,000억원을 넘긴다. 한진칼 주가를 주당 4만600원으로 잡아 단순계산했을 때 전체 지분의 33%가량을 매입할 수 있다. 전체 부채는 2,637억원에 불과할 정도로 재무건전성도 우수하다. 권 회장은 차입경영을 싫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IB 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반도건설이 자금조달을 위해 기업공개(IPO)를 단행할 수도 있고 권 회장의 동생인 권혁운 아이에스동서 회장도 언제든 지원사격에 나설 수 있어 자금력만큼은 확실하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반도건설이 KCGI와 손잡고 경영권을 노리면 조 회장 등 한진가(家) 입장에서는 경영권 사수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 몰린다. 국내 한 사모펀드(PEF) 운용사 대표는 “경영권 다툼이나 M&A 딜에서는 전략적 모호성을 끝까지 유지하는 게 자신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데 가장 도움이 된다”며 “권 회장 역시 3월 주총 날까지 물밑 협상을 이어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일범기자 squiz@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