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구 서울대 의대 교수는 지난달 31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 의대 국제관 연구실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전염병 관리 시스템을 전면 혁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형주기자
세계보건기구(WHO)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에 대해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PHEIC)’를 선포했다. 교역과 이동 제한을 권고하지는 않기로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2일 오전 현재 15명의 확진자가 나와 국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팬데믹(pandemic·전 세계적으로 전염병이 유행하는 사태) 가능성까지 점쳐지는 가운데 지난 2009년 신종 인플루엔자 유행 당시 질병관리본부장을 맡았던 이종구 서울대 의대 교수를 만나 신종 코로나에 대한 진단과 대응, 국가 방역 시스템 개선 방안 등에 대한 조언을 들었다. 지난달 31일 서울 종로구 명륜동에 자리한 서울대 의과대학 글로벌의학센터를 찾았을 때 이 교수는 앞서 열린 신종 코로나 긴급회의를 마친 직후였다. 이 교수는 “WHO가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하기는 했지만 교역과 이동 제한을 권고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직은 신종 코로나에 대한) 대처가 가능한 수준이라는 판단을 했다고 봐야 한다”며 “정확한 정보를 신속하게 제공해 국민이 불안감을 덜어내고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리스크(위험)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요구되는 시기”라고 강조했다. 이어 “백신이나 치료약제가 개발되지 않아 지역사회로 확산되면 통제가 불가능한 만큼 추가 확산을 막는 게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전염병 관리 시스템을 전면 혁신해야 한다고도 주문했다. 그는 “2003년 사스부터 2015년 메르스, 그리고 이번 신종 코로나까지 국내에서 벌써 세 번째 코로나바이러스가 유행하고 있다”며 “국방 분야에서 신형 무기를 확보하듯이 전염병에 대한 연구개발(R&D)을 적극 지원함으로써 전염병 대응무기인 백신이나 치료제를 개발해 궁극적으로 선진국 수준의 전염병 관리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람 간 전염 사례가 잇따라 나오며 국민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지역사회 감염 가능성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 환자가 급증한 것도 2차, 3차 감염자가 늘어나면서다. 환자를 통한 추가 감염이 늘면 누구를 통해 감염됐는지를 추적하는 것이 사실상 어려워지기 때문에 환자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메르스 사태 당시 지역사회와 병원 감염 등을 통한 3차, 4차 감염자가 늘면서 국내에서만 186명이 감염됐고 38명이 사망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보건당국이 능동적으로 감시하고 있는 역학 고리, 즉 정부 방역망 안에서 대부분의 환자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바이러스는 무증상 감염자가 많다는 게 특징인데.
△보건당국 입장에서도 무증상 감염자가 얼마나 많은 감염자를 만드느냐가 가장 우려되는 부분일 것이다. 이번 바이러스는 증상이 심할 때와 약할 때(증상이 거의 없을 때) 전파되는 양극단의 분포를 보이는데 무증상 환자가 늘어나면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현재까지는 우한에서 입국한 이력이 있거나 유증상자를 쫓아가면서 대응했는데 이런 역학적 접근이 불가능해진다는 얘기다. 백신이나 치료약제도 없는 만큼 환자 규모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면 보건당국이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자칫 메르스 사태처럼 병원 내 감염으로 치닫지 않도록 보건당국과 의료기관들이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특히 의료기관들은 고열 환자와 일반 환자가 섞이지 않게 하는 조치를 잘 지켜 지역사회와 병원 내 감염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지금까지 지역사회 감염이 나온 것은 검역 단계에서 잡아내지 못한 환자들이니 앞으로 2주 정도 지나야 (지역사회 확산 여부를) 제대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2주가 고비다.
-치사율이 높지 않다는 것은 다행 아닌가.
△현재 수준에서는 2~3%대의 치사율을 보이고 있다. 사스가 10%, 메르스가 40%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높은 수준은 아니다. 또한 목감기와 폐렴 증세 정도만 보이는 경증 환자가 많다는 점도 다행이기는 하다. WHO의 신종 코로나 환자 증가 추이를 날짜별로 보면 진행 추이를 부분적이나마 판단할 수 있다. 지난달 29일 중국 내 확진자가 5,997명에서 30일 7,736명, 31일 9,720명으로 늘었고 의심환자는 29일 9,239명에서 31일 1만5,238명으로 급증했다. 의학계가 주시하는 수치는 중증 환자 추이다. 사흘 새 1,239명에서 1,527명으로 늘었다. 중증 환자가 얼마나 급증하느냐, 의심환자가 얼마나 늘어나느냐에 따라 신종 코로나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WHO 상황 리포트를 보면 최신 수치인 1일 현재 중국 내 확진자 1만1,821명, 중증환자 1,795명으로 집계됐다.)
-전염병이 유행할 때마다 정부가 검역에만 치중한다는 지적도 나오는데.
△1340년대 베네치아에서 검역이라는 개념이 처음 나왔다. 전염병 보균자를 걸러내 정상인으로부터 격리하는 검역의 역사가 700년 정도 됐다는 얘기다. 그런데 그때나 지금이나 치료제가 없으면 집중 관찰해 면역력이 생겨 살아나면 다행이고 그렇지 않으면 사망하는 것은 똑같다. 갈수록 전에 없던 전염병이 창궐하고 있는데 우리는 여전히 700년 전처럼 검역에 치중하고 있다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유행 가능성이 높은 전염병에 대해 가설을 세우고 연구하며 대응 방안을 마련해가는 전문가 집단의 노력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기초과학을 연구하고 질환을 관리하는 것도 방역 못지않게 평상시부터 준비하고 대처해야 하는 영역이다.
-홍콩대 연구팀이 신종 코로나 백신 개발에 성공했다는 외신이 보도됐지만 투약까지는 최소 1년이 걸린다고 한다.
△백신 개발 등 바이오 산업 분야는 성장 가능성이 높지만 불확실성 역시 크다. 특히나 전염병의 경우 미래에 발생할지 모르는 불확실성에 투자해야 하는 만큼 민간 파트가 감당하기 쉽지 않다. 당연히 공적 영역이 맡아야 한다. 미국의 경우 몇 년 전 에볼라바이러스가 유행하자 국립보건원 주도로 후보 물질을 민간 의료기관에 보급하고 개발을 독려했다. 미국의 전염병 대응 시스템을 보면 이런 게 선진국형 방역 시스템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미 1990년대부터 앞으로 어떤 전염병이 유행할지를 예측하고 이를 위한 진단 키트와 백신 개발에 투자를 했던 것이다. 이러한 성과가 쌓여 세계적 수준의 중합효소연쇄반응(PCR) 기술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위기상황이 닥칠 때 국가의 진짜 실력이 나오는 법인데 우리가 이런 실력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국내에서는 국립보건연구원이 그런 역할을 맡아야 한다.
-대형 감염병은 백신의 경제성 문제가 걸림돌로 작용하는데.
△국가가 앞장서서 지원하고 민간이 뒤따르면 바이오 산업 분야에서의 혁신도 가능하다고 본다. 단순히 전염병 퇴치의 수준에 그치는 게 아니라 이 역시 신산업이자 블루오션의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여행이나 비즈니스가 늘면서 인구이동 자체가 급증하는 만큼 전염병이 발생하면 확산 속도가 빠르다. 시장의 크기가 엄청나다는 얘기다. 중장기적으로는 이런 시장성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번 사태가 심각해지면 국가 간 협력체제나 국제기구 차원에서의 대응 노력도 필요하지 않을까.
△몇 년 전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의료상비군을 두자고 제안한 적이 있다. 그는 에볼라바이러스가 유행했을 때 WHO나 CDC 같은 보건전문기관이 잘 대처하기는 했지만 비상상황에 대응할 시스템 자체가 없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전염병 확산의 진원지인 대다수 가난한 국가는 체계적인 질병 방지책이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어느 나라 정부보다 신속하게 자원봉사자들을 보내준 국경없는의사회가 큰 역할을 했지만 전 세계적인 재앙에 대처하는 데 비영리단체에 기댈 수는 없다. 그래서 의료상비군 등 체계적인 조직이 뒷받침돼 전염병이 시작된 곳의 피해를 줄이는 한편 다른 나라로의 확산을 막는 일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번 사태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본다.
-2009년 신종 인플루엔자 유행 당시 질병관리본부장을 맡았는데 당시 어떻게 대처했는가.
△국제적 비상사태였던 만큼 우리나라도 초비상이었다. 당시 다행히 타미플루라는 치료제가 있었지만 환자는 급속히 늘었다. 우리 자체적으로 백신을 개발한 후에야 사태가 종료될 수 있었다. 당시 위기관리 대응은 잘 이뤄졌다고 판단된다.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이었는데, 1,000만명분의 타미플루를 비축할 수 있도록 예산 지원을 했고(실제 투약된 것은 350만명분이었다) 백신 개발에도 총력 지원에 나섰다. 총 5,000억원 정도가 투입된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은 백신이나 치료제가 없기 때문에 그때보다 안 좋은 상황이지만 치사율이 낮은 만큼 폐렴 등에 쓰이는 약제를 비롯해 적극적인 의학적 처방을 통해 대처하는 수밖에 없다.
-메르스 사태를 겪은 후 우리나라도 시스템 개선 노력을 기울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
△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많은 의료기관이 음압시설 등 전염병 대응 시스템을 갖추는 데 노력한 것은 사실이다. 격리조치를 위한 인력 투입과 관리, 전염병 환자 동선을 짜고 이를 교육하는 부분 등 일상적으로 투자해야 할 부분이 무척 많다. 하지만 정부가 음압병실을 운영하는 의료기관에 주는 지원금은 1년에 몇 백만원 수준에 그친다. 반면 미국은 거점병원에 연간 수백만달러를 지원하면서 상시 비상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평상시 지속적인 교육과 훈련이 이뤄져야 이번처럼 비상상황에서 우왕좌왕하지 않고 실질적이면서도 효과적인 대처가 가능하다. 이번 사태가 진정된 후에도 그냥 넘어가지 말고 시스템을 전반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정민정 논설위원 jminj@sedaily.com
He is…
1956년 서울에서 태어나 1982년 서울대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1985년 서울대 보건대학원 석사를 마친 후 2003년 서울의대 의료관리학 박사를 취득했다. 1994년까지 경기도 연천군 보건의료원 의료원장으로 일하다 1995년부터 보건복지부 방역과장, 인천공항 검역소장, 건강증진국장, 보건정책관 등을 역임했으며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질병관리본부장을 지냈다. 2011년부터 서울대병원 대외정책실장, 건강사회정책실장을 지내다 2012년부터 2018년 7월까지 글로벌의학센터장을 맡았다. 2018년 11월부터 2019년 6월까지 WHO 세계보건비상프로그램 산하 고위험감염병대응국에 파견됐으며 지금은 서울대 건강사회교육센터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