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경제소사] 오페라 '카르멘' 파리 초연 실패

1875년 혹평 시달린 세기의 걸작

오페라 ‘카르멘’ 초연을 알리는 포스터. /위키피디아

‘한마디로 실패작, 재앙이다. 공연은 오래 못 간다.’ 1875년 3월3일 프랑스 파리 오페라 코미크 극장에서 초연된 ‘카르멘(Carmen)’에 대해 극작가 앙리 뒤팽이 내린 평가다. 그나마 이 정도는 약과다. 관객들은 야유를 퍼붓고 무대로 토마토를 던졌다. 4막으로 구성된 오페라의 3막이 끝나기도 전에 자리를 뜨는 관객도 많았다. 뒤팽의 예상대로 예약이 끊겨 공짜 표를 줘도 관객이 차지 않았다. 지나치게 선정적이고 비도덕적이며 비현실적이라는 비난도 이어졌다. 오페라의 여주인공인 집시 아가씨 카르멘은 ‘지옥의 여자’로 불렸다.


작곡가 조루즈 비제(당시 37세)는 좌절감에 젖었다. 혹평을 우려해 안전장치를 만들었기에 낙심이 컸다. 변호사 출신의 소설가로 훗날 상원에도 진출하는 프로스페르 메리메가 1845년 발표한 소설 ‘카르멘’을 나름대로 대중의 정서에 맞게 각색했는데도 계속되는 비난은 그의 심신을 나락을 떨어뜨렸다. 10대부터 작곡 천재로 불리며 파리 음악계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던 그는 스트레스로 우울증·호흡불안이 깊어진 끝에 초연 석 달 뒤 심근경색으로 죽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카르멘은 나의 최고 걸작’이라는 생각을 간직한 채.

젊은 작곡가의 비극적 죽음이 영향을 준 것일까. 비제가 죽기 직전에 계약했던 빈 오페라 극장에서 그해 10월 공연된 ‘카르멘’에 대한 반응은 파리와 정반대였다. ‘전통적인 오페라 형식을 벗어나는 경쾌한 음악과 파격적인 내용’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빈 공연의 성공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벨기에와 영국·미국·러시아 공연으로 이어졌다. 독일의 반응이 가장 뜨거웠다. ‘철혈재상’ 비스마르크까지 극장을 찾았다.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존경했던 ‘바그너에 필적한다’며 이런 평가를 내렸다. ‘열정으로 가득한 태양의 음악.’

초연은 왜 실패했을까. ‘나쁜 여자(팜파탈)’라는 파격적 캐릭터와 ‘비천한 집시’들의 밀수와 도둑질, 살인으로 끝나는 결말에 중산층이 기겁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유력하다. 고상하게 오페라를 감상하며 내심 짝을 찾는 탐색전을 치르던 유력하고 부유한 가문의 남녀들이 ‘카르멘’을 수용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초연 실패의 원인은 분명하지 않아도 확실한 게 두 가지 있다. ‘카르멘’을 내쳤던 파리의 오페라 코미크는 초연 8년 뒤인 1883년 다시 무대에 올렸다. 단명할 것이라던 ‘카르멘’은 오페라뿐 아니라 영화나 연극으로 무수히 공연된다. 여주인공의 노래처럼 사랑이 자유로운 새와 같은지는 모르겠으나 예술의 생명은 길다.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