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전 세계 기업의 풍경도 바꾸고 있다.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위해 가능한 한 대면접촉을 줄이려는 기업들의 노력 덕분이다. 그동안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회사 동료나 협력사 관계자들과 직접 얼굴을 마주보며 회의나 면접을 진행하던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면, 코로나19를 계기로 기업문화가 사이버 공간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재택근무의 확산이다. 글로벌 기업들은 사옥을 폐쇄하고 재택근무를 장려하며 코로나19의 확산 저지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구글은 다음달 10일까지 북미 지역에 근무하는 전 직원에게 재택근무를 할 것을 권고했다. 전 세계 구글 직원은 약 12만명으로, 이번 조치에 따라 북미 지역인 미국과 캐나다에 위치한 구글 오피스 11곳에 근무하는 10만여명이 재택근무를 하게 됐다. 기존에 ‘자발적 재택근무’를 진행했던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과 뉴욕시 오피스 직원들 역시 특별히 회사에 나와야 할 사유가 없는 이상 재택근무를 해야 한다.
미국 내에서 가장 먼저 코로나19가 시작된 워싱턴주 시애틀에 자리한 아마존과 페이스북의 경우 직원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이달 말까지 재택근무를 실시하기로 했다. 특히 아마존은 시애틀 외에도 미국 벨뷰와 뉴욕·뉴저지, 이탈리아 롬바르디아 등에 근무하는 직원들에게도 재택근무 방침을 적용하고 있다. 확진자가 나오지 않은 마이크로소프트도 데이터센터 등 일부를 제외하고 시애틀과 인근 레드먼드에서 근무하는 직원 약 5만4,000명에게 오는 25일까지 재택근무를 할 것을 지시했다. 워싱턴주에 한정되던 코로나19 확진자가 캘리포니아주에서도 나오면서 이곳에 본사를 둔 애플도 재택근무에 가세했다. 뉴욕타임스 역시 재택근무를 장려하면서 직원 1,700명 중 상당수가 집에서 근무하고 있다.
정부 기관에서도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재택근무를 적용하고 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9일 미 워싱턴DC 본부에서 코로나19 의심 환자가 나오자 직원 2,400명에게 재택근무로 전환할 것을 권고하며 미 연방정부 주요 기관 가운데 첫 원격근무를 도입했다. 시애틀 지역에 자리한 미 항공우주국(NASA·나사)의 아메스연구센터에서도 확진자가 나오면서 직원들의 재택근무를 의무화했다. 이 같은 모습은 조만간 다른 기관에서도 찾아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미국 연방인사관리처는 11일 기관장들에게 재택근무 정책을 즉시 검토하며 직원들에게 노트북을 지급하고 컴퓨터 네트워크에 대한 접근을 허가할 것을 강력하게 권고한 상태다.
수많은 주주들로 북적거리던 주주총회장 모습도 바뀌고 있다. 스타벅스는 오는 18일로 예정됐던 주주총회를 인터넷 생방송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이 행사는 원래 7,2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시애틀의 한 극장에서 열릴 예정이다. 12일 시애틀에서 총회를 개최한 소프트웨어 개발 업체 F5네트웍스는 처음으로 주주들에게 전자투표 의결권을 허용하며 참석자들이 총회장에 직접 출석하지 않도록 했다.
채용과정도 달라졌다. 링크드인은 지원자들에게 화상으로 면접을 볼 수 있도록 했다. 구글은 전 세계 지원자들에게 자사의 화상회의 애플리케이션인 ‘행아웃’ 등을 통해 면접을 보게 하고 있다. 이 밖에 컨설팅 기업인 PwC와 아마존 등도 화상면접을 진행하고 있다.
이처럼 재택근무 등이 보편화되면서 사무실에서 오래 머무는 것이 긍정적으로 여겨지던 그간의 상식이 바뀌고 재택근무가 본격적으로 정착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재택근무는 생산성을 13% 향상시킨다는 연구 결과가 있음에도 아직 이를 도입한 곳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미 경제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코로나19 확산으로 기업문화 변화와 함께 재택근무의 뉴노멀(new normal)이 이뤄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재택근무가 직원의 창의성을 해치고 근무시간을 늘릴 뿐이라며 재택근무의 효과를 과장하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창의성은 갑작스러운 만남이나 대화에서 나오는데, 재택근무는 이런 기회를 차단하며 사생활과 직장생활 간의 경계를 불분명하게 만들어 휴가 등을 되레 줄인다는 설명이다. 이 밖에 주주 입장에서도 기업의 경영진이나 이사회를 직접 대면해 평가할 기회가 줄어드는 반면 기업 입장에서는 껄끄러운 질문을 회피하는 방식으로 주주들의 반발을 잠재우기 쉬워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김연하기자 yeona@sedaily.com